[지구촌 편지/이용규]유럽선 통하지 않는 “손님은 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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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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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같이 판매자 간에 경쟁이 심한 나라에서는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보다는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힘을 갖는다. 전화만 하면 음식을 배달해 주기도 하며 24시간 영업하는 가게도 많다. 그래서 ‘소비자가 왕’이라는 말이 타당해 보인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곳은 물건을 파는 ‘판매자가 왕’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독일에서는 겨울이 되면 타이어를 겨울용으로 바꾸어야 한다. 눈이 오거나 빙판 길이 위험하므로 11월 초부터 다음 해 4월 말까지는 겨울용 타이어를 장착해야 한다. 그래서 10월 말이나 4월 말이 되면 자동차 정비소마다 타이어를 교체하려는 손님이 많다. 예약 사회인 이곳에서는 정비소에 가더라도 즉시 타이어를 교체해 주지 않고 1주일 후에 오라는 말을 들을 뿐이다. 타이어를 교체하려는 손님이 많으니까 10월 말에는 업무시간을 연장하면 고객도 정비소도 이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비소는 아무리 손님이 많더라도 오후 6시면 냉정하게 문을 닫는다.

또한 가게에서는 점심시간을 철저히 지키는데 은행 문방구 사진관은 낮 12시 반에서 오후 2시까지 영업을 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는 주인이 가게 안에서 쉬면서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이발소나 미장원도 오후 6시까지만 영업하므로 퇴근 후에 이용하기가 불편하다. 또한 1주일 중 이틀(일요일과 월요일)이나 문을 닫는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일요일에 영업을 금지하는 법률이 있어서 국가가 영업을 하지 말라고 강제하기도 한다. 우리로 보면 주인이 기꺼이 가게 문을 열고 장사를 하려고 해도 국가가 강제로 막는 모습이 의아할 뿐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일례로 독일의 헌법재판소는 일요일에 가게 문을 여는 일이 기본법에 위반된다는 판결을 지난해 말에 내렸다. 일요일이나 공휴일은 근로자가 쉬면서 안정을 취해야 하는 날이며 이는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외에도 판매자 중심주의의 사례는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사는 집 근처에는 자동차 정비소가 있는데 가격이 저렴해 항상 손님이 많다. 하지만 그 정비소는 토요일과 일요일은 물론이고 한여름과 겨울에는 각각 3주 동안 문을 닫는다. “그렇게 장사가 잘되는데 왜 그렇게 긴 기간 동안 문을 닫느냐? 쉬지 않고 매일 일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지 않느냐?”라고 물어 보았다. 그는 “장사가 잘되니까 항상 문을 열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다. 그러니까 굳이 매일 문을 열 필요가 없다”라고 대답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이라고 해서 1년 내내 문을 열지는 않는다. 작은 병원은 여름과 겨울에는 2, 3주씩 문을 닫고 휴가를 가는 사례가 많다. 그래서 휴가철에는 병원 일정을 잘 살펴보아야만 낭패를 당하지 않는다.

한번은 한국에서 친구가 와서 골프장에 함께 갔다. 자주 가던 골프장이었는데도 결국 같이 골프를 치지 못했다. 골프장에서는 친구에게 독일의 다른 골프장 이용권이나 골프실력 증명서가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대답하자 골프장에서는 골프를 칠 수 없다고 했다. 처음 온 사람이 골프장을 이용할 정도의 실력이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용을 허가할 수 없다는 말이다. 텅 빈 골프장에 손님이 왔으면 반갑게 맞이하리라 기대했는데 이곳에서는 원칙에 따라서 자격이 없는 손님을 받지 않는다. 애당초 돈을 버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정말로 돈을 기꺼이 내고 골프를 치고 싶어도, 밤늦게 음식을 먹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마감시간에 임박하여 가게에 가면 주인이 냉정하게 나가라고 말한다. 가게에서도 이발소에서도 세탁소에서도 힘의 중심은 손님이 아니라 주인(판매자)에게 있다.

이용규 한국은행 프랑크푸르트 사무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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