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문화&사람]<46>종로 목인박물관 김의광 관장

  • 입력 2008년 10월 13일 02시 55분


상여 앞뒤에 달아 잡귀를 쫓는 용수판(龍首板)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김의광 목인박물관장. 서울 종로구 견지동 목인박물관은 우리나라 전통 목인 5000여 점과 아시아 목인 3000여 점을 소장한 국내 유일의 목조각상 전문박물관이다. 박영대  기자
상여 앞뒤에 달아 잡귀를 쫓는 용수판(龍首板)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김의광 목인박물관장. 서울 종로구 견지동 목인박물관은 우리나라 전통 목인 5000여 점과 아시아 목인 3000여 점을 소장한 국내 유일의 목조각상 전문박물관이다. 박영대 기자
“8000여 목인 한점 한점에 파격의 미학”

70년대초 첫 만남… 국내외서 30여년간 모아

“이름없는 목수-장인들의 작품 세계에 푹 빠져”

‘만져 보세요.’ ‘사진 찍어도 됩니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 목인(木人)박물관 곳곳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조심스럽고 엄숙한 여느 박물관과는 첫 느낌부터 다르다.

2층 옥상으로 올라가면 테이블 3, 4개가 놓인 옥상 정원이 펼쳐진다. 사방은 온통 푸른 담쟁이덩굴로 둘러싸여 있고, 곳곳에 석상이 서 있다. 한쪽에는 나무 그네도 마련돼 있다.

편안하고 아늑한 옥상 정원에서 이 박물관을 세운 김의광(59) 관장을 만났다. 희끗한 머리칼에 푸근한 미소의 김 관장은 ‘도심 속 시골’ 같은 이 공간과 잘 어울렸다.

태평양그룹 창업자인 고 서성환 회장의 둘째 사위인 김 관장은 ‘설록차’로 유명한 장원산업 회장을 지낸 뒤 2년 전 이 박물관을 열었다.

○ 8000명 목인과 사랑에 빠지다

김 관장은 인터뷰 도중 여러 차례 “운이 좋았다”고 했다. 도자기나 그림이 아닌 목인과 사랑에 빠진 게 운이 좋았고, 힘들여 모은 목인으로 박물관을 열 수 있어 운이 좋았고, 목인의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어 또 운이 좋다고 했다.

목인은 나무로 깎은 사람이나 동물 모양을 말한다. 그런데 하고 많은 물건 중에 왜 하필 목인에 빠져들었을까.

“1970년대 초에 한 미국인 친구의 집에 초대를 받았어요. 그 친구가 모아놓은 우리 전통 목조 공예품을 보고 충격을 받았죠. 그때부터 목인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목인이 지닌 입체감과 색감 그리고 정형화되지 않은 파격의 매력에 푹 빠진 김 관장은 쉬는 날이면 인사동과 청계천의 골동품 가게를 뒤졌다. 당시만 해도 주로 상여에 쓰던 목인에 사람들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김 관장은 “쉽게 구한 것도 있지만 신당에서 쓰던 목인처럼 팔지 않겠다는 주인을 여러 차례 찾아가 ‘박물관에 꼭 진열할 테니 팔라’고 부탁해서 어렵사리 구한 것도 많다”고 말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중국과 티베트 네팔 일본 인도 등 아시아권의 목인도 모으기 시작했다. 한번은 네팔에서 산 목인이 흙이 묻어 있다는 이유로 반송을 거부당하자 수백만 원을 들여 네팔로 돌려보냈다가 다시 들여온 일도 있다. 이렇게 우리 목인 5000여 점, 아시아 목인 3000여 점을 모았다.

○ 과장, 축소, 생략 등 파격의 미학

우리나라 목인의 대다수는 상여에 장식됐던 것이다. 죽은 사람들의 마지막 길동무였던 것.

호랑이를 탄 남자, 연꽃 속의 심청, 갖가지 모양의 도깨비 등 형태가 특이하고 색깔이 화려한 목인이 많다. 상여 앞뒤에 달아 잡귀를 쫓는 용수판(龍首板)과 역시 상여를 장식했던 꽃판도 한쪽 벽을 채우고 있다.

본처와 첩 사이에 있는 양반, 무서운 표정의 저승사자, 물고기 몸에 사람 얼굴을 한 목인, 도끼를 든 일본 순사 등 재미있는 목인도 있다.

김 관장은 “이름 없는 목수와 장인들이 만든 목인은 과장과 축소, 생략 등 파격을 많이 사용했는데 이게 바로 목인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김 관장이 가장 아끼는 소장품은 줄을 타고, 물구나무를 서는 광대들의 면면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남사당패 목인이다.

목인박물관은 인사동과 가까워 가족이나 연인들의 나들이 코스로도 적합하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옥상 정원에서 커피나 차를 무료로 마실 수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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