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이순우/솔향 싱그러운 6월의 숲으로

  • 입력 2004년 5월 31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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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이 되면서 산과 숲은 여름의 짙푸름으로 그 모습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주말이면 으레 찾는 산촌 농원의 언덕 모서리에 소담한 숲을 이루고 있는 소나무들은 이제야 서서히 신록(新綠)의 생기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암록(暗綠)으로 거칠고 칙칙했던 솔가지들의 색깔이 밝은 기운을 되찾고 있는 것이다. 길쭉한 새순의 송화(松花) 꽃대를 키워내느라 힘겨워하던 소나무들이 비로소 몸을 추스르고 밝은 색조를 되찾기 시작했다. 상큼한 기운을 뿜어내며 소나무들은 뒤늦게 그들의 진정한 봄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항상 푸르러 보이기만 하는 소나무지만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삶의 오르내림을 눈치 챌 수 있다. 소나무는 1년에 두 차례 모습을 바꾼다. 늦은 봄 꽃을 피우고 잎을 갈며 새로워지고, 또 늦은 가을에는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며 다시 한번 새롭게 태어난다.

늦은 봄의 변모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때 소나무는 순결한 새 기운을 채워 나간다. 다른 나무들이 새봄의 연둣빛 화사함을 자랑하는 동안, 홀로 간직했던 어두운 색조를 비로소 거두고 담록(淡綠)의 건강하고도 무성한 여름옷 채비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숲이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면서도 항상 변치 않는 기품을 지니는 것은 절반쯤은 사실 소나무 덕분이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산록 곳곳에 무리를 이루고 있는 소나무 숲의 모습이야말로 사시사철 우리 산 숲의 정갈하고도 단아한 정취를 잃지 않게 해 준다. 쉽게도 불쑥 키를 키우는 낙엽송이나 아카시아, 획일적인 모양새로 우뚝하게 자라는 전나무나 잣나무와 달리 소나무는 소담스러운 모습으로 우리 숲의 품격에 깊이를 더해 준다.

소나무는 또 천천히 자라면서 다른 나무들과의 지나친 자리다툼을 피하고 그들과 자연스레 이웃할 줄 아는 어울림의 지혜를 실천한다. 더구나 소나무는 ‘추위가 온 뒤(歲寒然後·세한연후)’에야 그 푸름의 진가를 드러내 상록(常綠)의 한결같음을 펼쳐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이와 같은 소나무의 운치와 늘 푸름을 이제는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여러 빌딩의 조경수로, 아파트 단지의 정원수로 심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느리지만 마디게 커 나가는 기다림의 미학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만큼 우리의 생각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소나무가 마디고 느리게 큰다는 이런 ‘선입견’과 달리 우리 농원 언덕길을 따라 옮겨 심은 여남은 그루의 소나무는 ‘무섭게’ 자라고 있다. 햇빛을 잘 받는 곳이라서 그런지 새봄에 자란 키만도 한 자쯤 되어 보인다. 무릎 안팎에 불과하던 나무들의 키가 3년밖에 되지 않는 사이에 가슴 높이 이상으로 자라났다.

기진해 있던 소나무들이 신묘(神妙)한 푸름을 되찾으며 기상을 뽐내기 시작하는 모습이 확연하게 느껴진다. 소나무들이 새로 태어나면서 숲은 더욱 완벽해지고 있다. 이제 6월을 맞은 소나무들은 더욱 싱싱한 새 솔잎들을 돋우고 초록의 솔방울들을 키우며 숲 속에 짙은 솔 향내를 뿜어낼 것이다.

우리 가까이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소나무들이 자라는 숲에 깃들여 그들이 토해내는 싱그러운 솔 냄새와 함께 활기찬 생명(生命)의 숨결을 느껴 보는 것은 어떨까.

이순우 한국국제협력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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