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이태근/내가 먹을 벼 내 손으로 심어보자

  • 입력 2004년 5월 17일 19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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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시작될 무렵. 3월의 하루 적설량으로는 기상관측 이래 최고로 많은 눈이 내렸다는 그날, 비닐하우스가 주저앉아 버렸다. 한 해 농사를 위해 못자리를 부지런히 준비해야 하는 때에 무너진 농심은 하늘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생명을 포기할 수 없었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피해를 복구하고 서둘러 다시 준비한 모판에는 이제 제법 키가 자란 건강한 모들이 논으로 옮겨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요즘 들판에선 모내기가 시작됐다. 때마침 반가운 단비가 내려 농부의 몸과 마음을 바쁘게 들로 재촉한다.

요즘 모내기는 시작되는가 싶으면 바로 마무리된다. 기계로 하기 때문이다. 모내기가 빨리 끝나서 좋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앞선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기름값 때문이다. 모내기를 위해 움직여야 하는 트랙터, 경운기, 이앙기 등의 기계 돌아가는 소리는 바로 비싼 기름 타는 소리다. 우리나라의 농촌에 대량으로 쏟아 붓고 있는 농약, 화학비료, 비닐 같은 것들 역시 모두 기름이 없으면 만들지 못한다. 엄청난 석유 자원의 투입은 생산비를 높이고, 생태계를 교란하고, 물과 흙을 죽이는 꼴이 됐다.

농사짓는 모든 것이 전량 수입하는 기름으로 만들어지거나 움직이니, 우리나라 농산물의 국산화율을 따지면 과연 얼마나 될까. 옛날 어른들은 풀을 베서 소를 먹이고 소똥을 논밭으로 돌려 다시 농사를 지었다. 농약이나 비료가 없는 그런 논에는 미꾸라지, 붕어, 우렁이가 득실거렸다. 우리 선조들은 논에서 나는 민물고기로 필요한 단백질을 보충하곤 했다. 족대 들고 도랑에서 미꾸라지 잡아먹는 그 맛이 바로 우리 농업이었고 백성의 삶이었다.

서양의 농사방법은 연작 피해를 막기 위해 휴경 등의 방법을 활용하지만, 옛날부터 내려온 우리 논농사 방법은 아무리 연작을 해도 피해가 나지 않는다. 우리의 농사기술은 정말 과학적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농촌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몸에 맞는 우리 전통 기술을 버리고 우리 몸에 맞지 않는 기술로 옷을 만들어 입으려다가 폼도 나지 않고 근본까지 망친 것은 아닐까.

올해는 유엔이 정한 쌀의 해다. 우리로서는 쌀 개방의 기로에 선 해이기도 하다. 이건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국민이 관심을 가져야 할 큰일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쌀농사와 농업은 식량주권과 관계될 뿐만 아니라 홍수조절, 지하수, 대기정화, 수질정화, 폐기물처리, 토양유실 경감 등 연간 20조원 이상의 가치를 생산한다. 수입된 농산물이 개인의 건강을 지켜줄지는 몰라도 우리 모두의 흙과 물과 공기를 지켜주지는 못한다.

올해는 모내기에 한번 참여해 보자. 내가 먹을 쌀을 내 손으로 심어보자는 것이다. 60평 정도 심으면 내가 먹을 1년치 쌀이 돌아온다. 힘이 들면 1평이라도 직접 심어보는 건 어떨까. 해마다 5월 말 또는 6월 초가 되면 환경농업단체들이 내가 먹을 벼를 내 손으로 심는 행사를 연다. 도시 소비자와 아이들에게 농사 체험의 기회를 마련해 흙과 농업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끼게 하자는 취지다.

모도 심고 들밥도 먹고 대동놀이와 전통문화 체험도 하면서 논을 살리고 땅을 살리고 우리 마음도 살리는 일에 동참해 보자. 이것이 바로 환경을 살리고 농업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이태근 사단법인 흙살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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