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석동일/‘바닷가 모래언덕’ 다시 살려야

  • 입력 2004년 4월 5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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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매미의 흔적은 아직도 남아 있다.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다. 해안 지역이 태풍으로 인한 해일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바로 해안사구를 함부로 훼손하고 그 위에 건축물을 지었기 때문이다.

사구는 하천의 둑과 같은 존재다. 즉 해일로부터 해안 지역을 보호해 우리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사구의 모래는 파도 등 파괴적인 에너지를 잘 완충해내는데 사구에서 자라는 풀이나 나무도 에너지를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해안사구는 또 모래의 창고이기도 하다. 겨울철에는 차가운 북서풍이 갯벌과 모래해변의 고운 모래를 사구 위로 실어 나른다. 여름철에 크고 작은 물결이나 해일로 해변의 모래가 깎여 나가면 사구의 모래가 다시 해변으로 이동한다. 이처럼 해변과 사구는 서로 모래를 주고받으며 생태적으로 역동적인 관계를 이룬다.

최근 지구적 관심사가 된 지구온난화가 초래하는 재해 가운데 대표적인 게 해수면 상승에 따른 침수와 해일 피해다. 해수면이 상승하면 해일의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될 수밖에 없다. 해수면 상승과 해일 피해에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 있다면 바로 해안사구의 보호다. 바다와의 투쟁이라고 불렸던 네덜란드의 간척이 바로 인위적인 사구열의 축조였다. 그들은 바다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모래언덕을 쌓았던 것이다.

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해안사구의 중요성이 잘 인식돼 왔다. 서유럽에서는 1400년대부터, 미국에서는 개척 초기인 1800년대 초부터 해안사구를 보호해 왔다. 특히 영국에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을 통해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자원과 문화자산을 확보해 보전하는 시민환경운동인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주요 대상이 바로 이 해안사구였다.

미국이나 유럽 여러 나라들은 해안역(coastal zone)을 철저하게 보호한다. 해안사구 위에는 건축이 금지되며 기존의 건조물이나 주차장도 내륙으로 이동시킨다. 해안사구와 같이 주요 보호대상이 있는 해안에선 해안선으로부터 500m 내지 3km 이내에는 건축을 금지하는 식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지금껏 해안옹벽을 쌓고 있는 부끄러운 나라다. 콘크리트 옹벽이나 석축이 오히려 해변의 모래를 없앨 뿐이라는 사실은 전국 어느 해변에 가도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세기들이 개발과 이용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환경 보존과 복원의 시대라고 한다. 해안사구는 생태적으로 해양과 육지 모두와 영향을 주고받는 곳이며, 다른 생태계에 비해 쉽게 훼손되는가 하면 2∼3년 안에 빠르게 복원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해안사구 복원의 가장 큰 핵심은 침식이나 모래의 유실을 가속화하는 기존 콘크리트 옹벽들과 석축을 걷어낸 뒤 인공사구를 만들거나 사구 펜스를 설치하고 사초를 식재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연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다.

수많은 해수욕장과 사구가 잘 발달한 충남 태안군에서 ‘안면도 해안사구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사구 복원작업을 시작한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복원정책이 다른 지방자치단체로 파급돼 우리 해안을 살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석동일 해안살리기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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