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평준화 논란과해법④]"학교다양화 학생 선택권 늘려야"

  • 입력 2002년 3월 25일 17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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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평준화 정책은 관련 이해 당사자들이 모두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그 해법에 대해서는 입장에 따라 의견이 달라 좀처럼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과제임에 틀림없다. 교육 당국자와 교육전문가 등을 초청, 그동안 논의된 과제들을 정리하고 합리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좌담회를 마련했다.》

▼글 싣는 순서▼

- <3>대안은 없나
- <2>평준화의 공과(功過)
- <1>능력주의냐, 평등주의냐

▼참석자▼

정창현(서울 중동고 교장)

신현석(고려대 교수·교육학)

우천식(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유춘근(교육인적자원부 지방교육기획과장)

▽사회〓고교평준화 제도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고교 입시경쟁을 해소했지만 하향 평준화로 인해 교육 경쟁력이 저하됐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정창현 교장〓일선에서는 평준화의 부작용을 실감합니다. 수준이 다른 학생들을 한 교실에 모아 놓고 가르치기 때문이지요. 평준화라지만 학교간 학력차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고교 평준화는 국민성까지 평준화했습니다. 기회, 결과, 능력의 평등이란 3가지 측면이 있는데 기회의 평등만 부각된 것 같아요. 자신이 가고 싶은 학교를 선택할 수 없지 않습니까. 획일적 평등주의가 또 다른 불평등을 만든 것이지요. 이대로 가면 우리 교육의 미래는 없습니다.

▽우천식 연구위원〓산업화시대에는 모두가 일류여야 한다는 환상을 가졌지만 이제는 여기서 탈피해야 합니다. 모두에게 똑같은 교육을 시키자는 것은 사회주의 교육이나 다름 없습니다. 다양한 인재를 기를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절실합니다. 획일화환 공교육에 대한 불신으로 사교육비가 학교 납입금보다 3.6배나 들어가도 정부 교육재정의 86%에 육박할 정도로 국민 부담이 큽니다.

▽신현석 교수〓학교에 대한 획일적인 규제가 교육의 특성화와 다양화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도시와 농촌, 서울은 강북과 강남 등 지역별 학력 격차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기도 고교 신입생 재배정 사태는 학교 선택권 박탈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기 시작했다는 신호입니다.

▽유춘근 과장〓경제적 수준이 높아지면서 평준화 문제도 불거졌습니다. 평준화가 우리만의 제도라거나 획일적인 정부 주도 정책이란 오해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미국에는 우리 같은 입시가 없어요. 학교 배정도 우리처럼 근거리 배정이 원칙입니다. 다만 사립학교의 자율권이 큰 것은 우리와 다른 차이점입니다.

▽사회〓평준화 논란에는 이데올로기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경쟁만을 앞세울 경우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텐데요.

▽신 교수〓평준화가 중학교 입시경쟁을 해소한 것은 사실입니다. 고교 이름 때문에 차별받지 않아도 되는 심리적 위안감을 준 것은 일종의 ‘보너스’입니다. 평준화를 경제 논리로만 재단하는 것은 대다수 국민의 이런 심리를 간과한 것입니다. 경제적 접근법이 이상적이지만 국민정서와는 맞지 않습니다.

▽유 과장〓70년대에는 고교 진학률이 40%에 불과했어요. 고졸자는 준비된 생산인력이었고 경제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초중고 교육은 보편교육이자 시민교육입니다. 이런 시민교육에까지 경쟁주의가 우선돼야 하겠습니까.

▽우 위원〓이젠 지식 중심의 공부 못지 않게 컴퓨터 능력과 어학 능력 등 특기적성이 중요해지고 학력 기준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평준화로 인한 학력 저하를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한 때문인지 변변한 연구성과도 하나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정 교장〓모든 학생들이 ‘수학 박사’가 될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재능 있는 학생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안돼 있어요. ‘공부 못하는 게 죄냐’고 하는데 거꾸로 ‘공부 잘하는 것도 죄냐’는 말도 있어요. 능력 있는 아이들은 그 수준에 맞게 가르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두루뭉실하게 가르치다 보니 수재도 둔재가 됩니다.

▽유 과장〓학력 저하에 대한 뚜렷한 증거는 없습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학업성취도 국제비교(PISA)’ 결과를 보면 15세 이상의 한국 학생은 최상위권입니다. 학력은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더 큰 영향을 줍니다. 평준화가 학력 저하를 가져왔다는 과학적인 연구는 아직 없습니다.

▽신 교수〓요즘 학생들이 지능은 높아졌지만 지적 수준은 떨어진다고 합니다. 교사들이 교과서적 지식을 지적 능력의 기준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대입 심층면접을 해보면 서울과 지방, 서울 강남과 강북 지역 학생간의 학력차를 느낍니다. 경제 부처는 학교간, 지역간 학력 격차를 솔직히 인정하고 학력이 낮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개입해 ‘결과의 평등’을 이뤄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웁니다.

▽사회〓평준화 보완책으로 사학의 자율권을 확대하자는 의견도 있는데요.

▽우 위원〓미래가 불확실하면 다양한 실험을 통해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위험이 분산되죠. 특수목적고는 전체의 2%에 불과하고 절반 가량 되는 사립고는 자율권이 없는 준공립입니다. 학교 선택권을 늘리고 다양한 교육으로 교육의 체질을 바꿔야 합니다. 사립부터 단계적으로 푸는 게 바람직합니다.

▽정 교장〓공립은 정부 지원을 늘리고 사학은 자율권을 대폭 늘려줘야 합니다. 자립형 사립고 지정 조건을 지금보다 완화해 전체 학교의 10%까지 확대해야 합니다. 서울시교육청은 희망 학교들이 많은데도 아예 추천조차 하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유 과장〓자립형 사립고를 올해 3개, 내년에 2개 시범운영합니다. 자립형 사립고의 재단전입금 부담을 현재 20%에서 15%로 낮추면 학생 납입금 부담이 지금보다 4배 올라갑니다. 학생 등록금은 공공요금으로 규제 대상이어서 섣불리 인상할 수 없습니다. 사학도 수익사업을 찾아 재단 전입금을 확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 위원〓자립형 사립고 확대는 경제부처와 교육부가 협력해 풀어야 해요. 학부모의 공감대만 얻어 재단 전입금 비율을 10∼15%로 낮춰야 합니다. 자율화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에요. 한번 권한을 나눠주면 돌려받기 어렵습니다. 네덜란드의 사학은 정부 지원을 받지만 완전한 선발권이 있어요. 교육부는 규제보다는 학부모 반발 등을 조율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조정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정 교장〓자립형 사립고의 조건을 완화하는 대신 국고를 일부 지원해야 해요. 이 학교 학부모도 세금을 내지 않습니까. 국고 보조가 있으면 자립형 사립고를 늘리는데 큰 문제가 없어요.

▽신 교수〓경제부처는 교육개혁의 속도와 정책의 일관성 등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다양한 이해집단과 국민정서 등을 고려하면 경제 논리로 해법을 찾기 어렵습니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보다 다면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국민 정서에도 맞고 경쟁력 강화에도 부응할 수 있도록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합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Rm기 위한 미봉책은 곤란하고 일관성 있는 장기 청사진이 필요합니다.

▽우 위원〓평준화 보완론에는 대부분 동의하는데 방법이 문제군요. 교육정책에 관한 결정권을 쥐고 있는 학부모의 60% 이상이 평준화 폐지에 반대합니다. 교육 수요나 직업사회도 빠르게 변하고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평준화를 폐지해도 학력 중심의 획일적 서열화는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교육도 경제적 측면에서 재검토하고 교육재정을 효과적으로 마련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최근 교육인적자원부와 경제부처간에 접점이 마련된 것은 다행입니다.

▽정 교장〓다양한 교육 수요를 충족시키려면 학교가 먼저 다양해져야 합니다. 최근 발표된 공교육 내실화 방안에 나타난 것처럼 왜 교육부가 보충수업이나 체벌을 하라 말라 간섭합니까. 모두 학교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면 됩니다. 사설학원 모의고사를 금지한 것은 대찬성입니다. 그러나 여러 학교가 연합해 출제한 시험까지 규제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유 과장〓교육부는 앞으로 평준화의 큰 틀은 유지하면서 자립형 사립고, 자율학교, 특성화고 등을 확대해 문제점을 보완해 나갈 계획입니다. 일부 시행하는 학교에서 효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울러 교수 학습방법 개선 등 교실개혁과 도농간의 교육 격차를 줄이는 노력도 병행해나가겠습니다.

정리〓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박 용기자 parky@donga.com

▼자립형 사립고란▼

고교평준화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대안으로 자주 거론되는 자립형 사립고는 어떤 학교일까.

자립형 사립고는 일반 사립고와는 달리 학생선발, 등록금책정, 교육과정 편성 등에서 학교장이 자율권을 갖는 학교다.

지금도 전체 고교 1969개교 중 930개교(47.2%)가 사립이지만 말 그대로 사학의 역할을 하는 곳은 거의 없고 다른 공립학교와 마찬가지로 ‘준공립’이나 다름없다. 교육수요 팽창과 함께 대거 설립된 사립학교들이 공교육의 큰 축을 차지하면서 공사립의 구분이 없어졌다.

교육부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재정자립 능력이 있는 일부 사립고부터 학생선발권 등 자율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민족사관고 광양제철고 포항제철고 등 3개고는 올해부터, 부산해운대고, 현대청운고 등 2개고는 내년부터 자립형 사립고 시범학교로 운영된다.

이들 학교는 전국에서 자신이 원하는 학생을 선발할 수 있지만 국영수 위주의 지필고사는 금지되고 내신성적과 면접 등으로 선발한다.

또 등록금은 연간 등록금이 120만원 정도인 일반계 고교의 3배 이내에서 책정할 수 있다. 민족사관고는 225만6000원, 부산 해운대고 300만원, 현대청운고 420만원 등으로 높은 편이지만 전체 학생의 15%에게 장학금 지급이 의무화돼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도 입학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대신 자립형 사립고는 전체 학교예산을 학생납입금 80%, 재단전입금 20%로 충당하는 등 재단에서 한해 5억원 이상을 출연해야 하고 국가 지원은 한푼도 없다.

또 교육과정이나 교과서도 국민공동기본교육과정을 빼고는 학교 자율로 선택할 수 있어 특성화 교육이 가능하게 됐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들 학교에는 원칙적으로 장학활동이나 감사를 금지해 학교가 건학이념에 맞게 자율적인 학교운영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이인철기자 inchul@donga.com

일반고-자립형 사립고 비교
구 분사 립 고 교자립형 사립고
학생선발평준화 지역 : 학군별 배정
비평준화지역 : 학교별 선발
전국단위 선발 가능
국영수 지필고사 불허
교원자격교원자격 필요
산학겸임교사, 강사 등 활용
학교장은 자격 불필요
산학겸임교사(교원정원의 1/3) 등 활용
교육과정
교과서
교육감 승인,국정 검인정
교과서 사용
국민공통과정외
자율 운영
수업일수220일 이상198일 이상
법인전입금수익용 기본재산
수익의 80% 이상
학생납입금 대비
8 : 2 이상
등록금시도교육감 결정 일반고의 3배내
학교장 결정
장학생 비율규정 없음 학생 15%이상
지급 의무화
재정결함 보조보조할 수 있음없음
학교평가평가실시 가능매년 평가 및
결과발표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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