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24시]차장 感따라 약·중·강…달리는 '유리온실'

입력 2001-01-18 18:42수정 2009-09-2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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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6시40분 지하철 2호선 강남∼역삼역 구간. 연일 계속되는 강추위에 바깥은 꽁꽁 얼어붙었지만 퇴근길 ‘만원(滿員) 전동차’ 안은 전혀 사정이 달랐다. 차창 안쪽엔 김이 잔뜩 서려 있었다.

지상의 ‘방한 복장’ 그대로이던 이정욱씨(29·S대 대학원)는 5분 뒤 목선을 타고 흐르는 땀 때문에 목도리와 코트를 벗어야 했다.

“겨울에도 적당히 서늘해야 오히려 쾌적한데….” 결국 이씨는 주변의 유리창을 잠시 열었다. “창문 좀 닫죠”하며 제지하는 승객은 아무도 없었다. 전동차 안 온도는 26.9도였다.

이렇게 겨울철 전동차 내부온도가 종종 계절도 무시할 정도로 엉뚱한 이유는 뭘까. 자동 온도조절 장치가 달린 2기 노선과 달리 1기 노선은 여전히 모든 전동차의 차내 온도가 수동으로 조작되기 때문.

자세한 사정은 이렇다. 전동차 맨 뒤칸에서 승객들의 출입과 안내방송을 담당하는 차장이 차내 온도 계측기를 보며 온도조절기를 작동한다. 여름철 냉방의 경우 ‘냉랭익선(冷冷益善)’이라 별 문제가 안되지만, 난방은 ‘약―중―강’ 가운데 한 스위치를 선택해야 한다.

1기 전동차에는 서로 용량이 다른 두 대의 난방기가 있는데 ‘약’으로 틀면 소용량의 난방기가, ‘중’이면 대용량 난방기가 작동하고 ‘강’으로 틀면 두 대가 동시에 작동한다.

문제는 차장이 승객 밀도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스위치를 조절한다는 점. 4호선의 한 차장(37)은 “역에 정차했을 때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고 승객들이 얼마나 타는지 어림짐작하는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더구나 차장은 한 겨울에도 활동의 편의를 위해 얄찍한 점퍼를 제복으로 입기 때문에 ‘체감 온도’가 승객과 다르다. 결국 ‘차장의 피부’가 온도 센서인 셈.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겉옷을 입든 벗든 알아서 온도를 맞추는 게 상책”이라고 ‘베테랑 승객’들은 입을 모은다.

12일 오전7시50분 지하철1호선 용산∼남영역 구간에서 만난 P씨(29)는 차량 사이의 연결통로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틈새로 바람이 들어오거든요. 붐비는 출근시간엔 외투 벗을 공간도 없을 정도로 갑갑한데, 오히려 여기는 온도가 적당해 견딜만합니다.”

서울지하철공사측은 “승객이 느끼는 온도가 천차만별이라 차장이 ‘높은 온도’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순차적으로 자동 온도조절 장치가 구비된 전동차가 도입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차내 온도가 적합하지 않을 경우 즉각 사령실(1∼4호선 02―585―2101, 5∼8호선 02―6211―2200)로 전화를 하면 온도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5호선 일부와 8호선을 제외하면 정작 전동차 안에는 승객이 차장과 직접 연락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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