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서자]『낭비=죄악』 자린고비 만세!

  • 입력 1998년 1월 8일 20시 42분


서울 강서구 등촌3동 미주아파트에 사는 주부 박분(朴芬·39)씨. 이 동네 주부들 사이에 ‘압력밥솥 다림질’로 유명하다. 박씨는 13년전 결혼할 때 장만한 5ℓ짜리 알루미늄 압력밥솥을 아직 그대로 사용한다. 아침에 지은 밥이 뜸드는 사이에 밥솥의 열기를 이용해 남편의 양복바지며 재킷 손수건 등을 다린다. 박씨는 압력밥솥의 ‘새로운 기능’을 우연히 발견했다. 어느날 아침 전기가 나가는 바람에 급한김에 남편 바지의 주름을 펴는데 압력밥솥을 사용했던 것. 이제 밥이 뜸드는 동안 와이셔츠 한장 정도는 거뜬히 다리는 경지에까지 발전했다. 초등학교 3,5학년생 두 딸을 두고 있는 박씨네 32평 아파트에는 에어컨은 물론 흔한 전자레인지도 없다. TV도 꼭 보고자 하는 프로그램을 볼 때만 켠다. 박씨의 절약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야채 삶은 물은 목욕할 때 쓴다. 세탁기는 빨랫감을 모아 한번에 돌린다. 빨래 헹군 물은 변기물로 사용한다. “친정어머니는 홈통의 빗물을 모아 이불빨래를 했고 그 물로 머리를 감았어요.” ‘대를 이은’ 절약내력이다. 박씨네 4인가족의 한달 수도사용량은 평균 4.5t. 서울시가 집계한 4인가족 한달 수도사용량(19t)의 4분의 1도 안된다. 박씨네 한달 전기사용량은 1백kWh. 지난해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치인 한달 9백72kWh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박씨처럼 물 한방울을 소중히 여기는 주부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도 많다. 부끄럽게도 지난해까지 우리나라 가정내 에너지소비는 선진국을 능가했거나 그에 못지 않았다. 가구당 하루 평균 물소비량은 2백6ℓ. 영국의 1백32ℓ, 독일의 1백46ℓ, 프랑스의 1백47ℓ보다도 훨씬 많다. 물을 소중한 자원으로 생각하지 않는데다 선진국에 비해 싼 물값 때문이다. 현재 서울의 수도요금은 t당 2백7원. 4인가족의 한달 수도요금이 설렁탕 한그릇 값 정도인 5천4백46원에 불과하다. 가전제품이 갈수록 대형화하면서 전기사용량도 급증했다. 우리나라의 연간 1인당 소비전력량은 선진국보다 낮은 4천6kWh(96년 통계). 그러나 86∼95년 10년간 증가율 통계에선 낭비가 엿보인다. 프랑스가 19.2%, 미국이 18.1%, 영국이 18.7% 수준으로 비슷하다. 우리만 무려 166.3%로 이들의 9배나 된다. 우리와 비슷하게 경제성장을 해온 대만의 증가율도 88.0%로 다른 선진국들보다는 높지만 우리의 절반에 불과했다. 전기 한등, 수돗물 한 컵 아낄줄 모르던 풍조 속에서 주위로부터 “궁상맞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박씨. 그러나 이제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불어닥쳐 사정은 달라졌다. “이제 절약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낭비하는 것은 죄를 짓는거나 마찬가지예요.” 박씨는 말한다. 〈박경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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