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에선]美 초등학생들의 숙제

  • 입력 1997년 4월 5일 20시 21분


초등학교 6학년 딸 아이가 사회숙제를 하면서 끙끙대고 있기에 들여다 봤더니 웬 연설문을 쓰고 있었다. 미국에 온지 2년, 이제 겨우 일기 정도 쓸 수 있는 영어실력인데 연설문이라니…. ▼킹목사의 연설을▼ 신통한 생각에 다시 보니 제목은 「나에겐 꿈이 있다(I Have a Dream)」.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목사가 1963년에 인종차별 폐지를 부르짖었던 그 유명한 연설과 제목이 같다. 연유를 물었더니 딸의 대답은 이랬다. 『여기선 사회숙제는 다 그렇게 해요. 내가 킹목사가 되어서 연설을 한번 해보는 거지. 그런데 우리 반의 흑인아이들이 백인애들보다 더 착하거든. 그래서 흑인들을 좋아한다고 쓸 생각이에요』 킹목사 연설을 학생이 숙제로 해보는 것은 이른바 「창조적 역사 배우기(Creative Learning of History)」.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고 암기하는 데서 한걸음 더나아가 실제로 그역사 속의 인물이 되어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하는 그런 숙제였다. 딸아이의 담임은 모든 초중고교에서의 역사공부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미국교육에 관해 얘기가 길어지자 담임은 학생들이 컴퓨터를 이용해 만든 꿀벌 관찰도를 보여주었다. 모니터 화면에 꿀벌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화려하기가 이를 데 없다. 담임의 설명은 이러했다. 『꿀벌에 관한 객관적 사실들은 숙지하되 꿀벌의 모양과 색깔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그리도록 한다』 역시 창의력이었다. 우리처럼 단지 시험점수를 위해 달달 외우고 베끼는 식이 아니었다. 이처럼 미국의 교육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워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史實)조차도 창의력 배양이라는 틀 속에서 용해되고 흡수되고 있었으니까. 경제난 극복을 위한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 방침을 보면서 창의력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벤처기업이 성공하려면 창의력이 넘치는 기업가 지망생들이 우선 많아야 한다. 독창성이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자산이다. 물론 우리로선 재정지원도 중요하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뒤를 받쳐주는 자금력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미국은 벤처기업들이 이른바 정크 본드(일명 싸구려 채권)를 발행한다. 위험도도 높지만 수익률도 높은 정크 본드를 통해 자금을 마련한다. 한국은 정크 본드가 있다고 해도 이를 사줄 투자가가 없다. 부동산 한 점 없고 있는 것이라곤 아이디어와 열정뿐인 젊은이들에게 대출해 줄 은행은 없다. ▼에디슨을 키우는 사회▼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돈보다 창의력이다. 경쟁사나 경쟁국가를 앞서가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10년,20년 앞을 내다보는 예지와 통찰력이 없는 곳에서 벤처기업이 자랄 수는 없다. 창의력은 역시 어릴 때부터 길러져야 한다. 사색당파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 중요한 교육과, 학생들 스스로가 킹목사가 되어서 인종차별 폐지 연설을 해보는 교육은 사고의 폭에 있어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올해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태어난지 1백50년이 되는 해다. 그의 고향인 뉴저지주의 웨스트 오렌지에서는 갖가지 기념 행사가 한창이다. 우리 사회도 병아리를 까기 위해 어머니 몰래 닭 우리에 들어가 달걀을 품고 있었다던 어린 에디슨이 많이 나오는 사회가 돼야 하고, 또 그런 에디슨을 키워주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재호<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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