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살아보니]문법 안맞는 상투적 영어질문『짜증』

  • 입력 1997년 2월 28일 20시 24분


버스를 타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다 보면 종종 버스 옆자리 승객이 나에게 말을 걸곤 한다. 그것도 몹시 짧은 영어로. 『당신, 버스(You, bus?』 몇잔 걸쳤음이 분명하다. 다른 승객들은 내가 어떻게 나올까 기다리는 눈치로 나를 쳐다보고 나는 당황한다. 『버스, 집(Bus, home?)』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을 잡지만 신경쓰지 않고 보던 잡지를 계속 읽는다. 『당신, 집(You, home?)』 그제서야 나는 그가 나에게 「이 버스 타고 집에 가느냐」고 물으려 했음을 알게 된다. 초급과정 영어를 공부하겠다고 원치도 않는 대화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그에게 화가 난 나는 문법에 딱 맞는 한국말로 한마디한다. 『당신 문장에 동사가 있었다면 이해하기가 더 쉬웠을 겁니다』 그가 더이상 말을 걸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한 말이지만 그는 창피해하기는 커녕 오히려 안심한 듯 한국말로 『물론 그러면 좋겠지만 난 동사를 몰라요』라고 답한다. 그의 솔직함에 나는 화가 좀 누그러진다. 왜냐하면 내가 한국말을 배울 때도 동사 사용에 몹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영어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한국인들이 버스나 거리, 그 어디에서건 외국인에게 말을 걸고 싶어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할 수 있다. 그리고 관광객이나 단기 체류자의 경우 이러한 대화는 환영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요즘 여러분이 만나는 외국인들 중 많은 경우는 한국에서 몇개월 아니면 몇년에 걸쳐 산 사람들이고 또 앞으로도 그런 외국인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자, 이제 그러면 장기체류 외국인들이 단지 한국에 왔다는 이유로 하루에도 여러번씩 문법에 안맞는 영어로 던지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얼마 동안 한국에 있었습니까』 『한국음식을 좋아합니까』라는 질문에 소위 「스무고개」식으로 답변을 해야 하는 경우를 한번 생각해보자. 아마 외국인들은 그런 질문이 나오면 도망가고 싶어질 것이다. 특히나 질문을 던진 사람이 답변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질문을 하기 위해서인 경우라면. 정 스무고개를 하고 싶다면 답변에 따라 질문을 적절하게 바꿔가든지, 상투적인 질문에서 벗어난 것들을 물으면 어떨까. 내 학생들은 때때로 나에게 그들이 읽고 있는 책에 나온 모르는 것들을 묻거나 고궁 사찰 등으로 나를 초청해 그들의 문화를 설명해준다. 이런 대화라면 즐겁지 않겠는가. 존 하베이<전 서강대 영어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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