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재기자의 티비夜話]대한민국 세대차의 거울, KBS주말극 ‘수상한 삼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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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31일 20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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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 속에 밀착한 막장 드라마의 저력?
● 50대 이상의 대리만족형 설정과 대사를 통한 막강한 흡인력
● 막장드라마 아닌 한국형 가족드라마의 완성형이자 신기원


올 상반기 TV시청률 최장기 1위 프로그램 '수상한 삼형제'
올 상반기 TV시청률 최장기 1위 프로그램 '수상한 삼형제'

"어이쿠 벌써 8시가 넘었어? '수삼'할 시간이네."
"그러게, 오늘 '엄청난'이 OO하는 날인데…"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성인이라면 주말 저녁에 반드시 들어봤음직한 대화일지 모른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자녀들은 저녁 8시에 방영되는 KBS '수상한 삼형제'(이하 수삼)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채널 선택권이 없는 신세대라면 그저 부모님을 따라 수삼을 시청하거나, 아니면 조용히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곤 한다.

애당초 기획된 50회만으로는 그 성공을 빛내기 어려웠는지, 수삼은 66회를 넘어서 종방(70회)을 불과 2주 남겨놓고 있다. 최근 평균 시청률은 40%를 훌쩍 넘길 정도. 올초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로 문화현상을 일으킨 KBS 드라마 '추노'가 20% 중반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것에 비춰보면 다채널 다매체시대에 압도적인 시청률이다.

막강한 주목도에 따른 부수효과는 차치하더라도 막대한 수입부터 거론해 보자. KBS관계자는 '수삼' 회당 광고 수익이 4억3000만 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0월17일의 1회부터 64회까지 한회도 빠짐없이 광고를 모두 팔아 치웠다. 재방송 광고도 적지 않은 수준이다. 결국 이 드라마 시리즈 하나의 CF수입만 약 350억원을 벌었다고 한다.

게다가 수삼은 이른바 억대 몸값과 화려한 CG 등 높은 제작비가 필요한 블록버스터형 한류드라마가 아니다. 자체 스튜디오와 방송국 인근 촬영장에서 제작되는 평범한 주말드라마에 가깝다. 결국 잘 나가는 톱스타와 화려한 기술 없이 생활 속 이야기만으로도 대박 드라마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입증한 셈이다.

■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 VS "우리 속내를 가장 제대로 드러낸 드라마"

하지만 지난 7개월 동안 역풍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수삼이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여론주도층 사이에서 별다른 사회의제설정능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트렌드를 선도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놓치고 있던 사회모습을 재발견하게 만드는 여론 환기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드라마를 둘러싼 유일한 화제는 최근 한국 드라마계의 화두인 '막장 드라마' 논란으로 수렴됐다. 일찍부터 KBS안팎에서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 그러니까 막장 드라마 소재를 활용해 돈벌이에 나선 드라마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그 비판의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올초 취임한 김인규 KBS 사장까지 나서 "(수삼에 대해) 하도 말이 많아서 주말에 두 편을 모두 다 봤는데, 선정적인 표현이 많이 자제 됐는지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고 방패 역할을 자임해야 할 정도였다. 공영방송을 추구해야 하는 처지에 막장방송 논란은 꽤나 신경 쓰이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공한 쿠테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말도 있던가. 방송가에서 높은 시청률을 얻은 드라마가 '막장 논란'이건 '선정성 논란'이건 시비를 피해간 일은 거의 없다. 시청률이 높은 이유가 단순하게 자극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설득력을 가진 얘기일까? 과연 수삼에 숨겨진 성공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수상한 삼형제의 5가지 성공이유

수삼의 주인공은 철저하게 중년층 이상이다. 봄바람에 ‘꽃중년 로맨스’ , ‘중년 로맨스’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드라마 수삼.
수삼의 주인공은 철저하게 중년층 이상이다. 봄바람에 ‘꽃중년 로맨스’ , ‘중년 로맨스’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드라마 수삼.

① 확고한 마케팅 포지션, 중년층을 집중 공략

2010년 상반기 대한민국에는 2개의 방송소비자가 존재한다. '수삼'을 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만일 당신이 수삼의 스토리에 흥미를 갖고 즐기는 쪽이라면 '기성세대'에 가깝다고 보는 게 편하다.

한 드라마 작가는 "과거의 주말 드라마는 모호할 정도로 '가족드라마'를 지향했다"고 지적한다. 저녁 8시라는 시간적인 특성이 온 가족을 TV앞에 불러 모아도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는 얘기다. 근래 히트한 '며느리 전성시대'나 '엄마가 뿔났다'가 바로 그런 '착한' 드라마에 가깝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공방정식이 반복될 무렵, 전작 '조강지처 클럽'으로 유명한 문영남 작가는 주말극 70회 전체를 신파성 내용으로 채우는 과감한 도전을 감행한다. 주시청자 층을 아침드라마에 익숙한 50대 중년층으로 확연하게 좁히고 나선 것.

주말드라마들이 으레 젊은 미혼 부부가 결혼을 통해 성숙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면, 수삼은 은퇴를 눈앞에 둔 노부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독특한 전략으로 대박을 일궜다.

이 드라마의 미덕은 속물적인 대사에 있다.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의 막장 고부지간 이효춘(사진 아래서 3번째) 도지원.
이 드라마의 미덕은 속물적인 대사에 있다.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의 막장 고부지간 이효춘(사진 아래서 3번째) 도지원.
② 결혼/불륜/이혼/임신/사업실패/고부갈등…생활밀착형 주제

국민드라마로 등극한 이 작품이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이유는 이른바 극단적 소재들이 매주 등장해 기성세대의 감수성을 강하게 자극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김순경-전과자 부부가 아니며, 한 가족의 일상적 고난(명퇴, 병마, 사기, 불륜, 이혼, 금전문제, 고부갈등)이 진정한 주인공에 가깝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일찍부터 며느리 3인방 도지원(엄청난 역), 김희정(도우미 역), 오지은(주어영 역)이 뿜어내는 가공할 만한 패륜적 발언들은 시청자들의 불쾌감을 자극해왔다. 그러나 문작가는 꿋꿋이 "현실은 이보다 더하다"는 논리로 리얼한 인간군상의 캐릭터를 그려냈다는 평가다.

결국 출연진 대부분이 시청자들로부터 '속물' '패륜아' 등 극단적인 비난까지 받아야 했다. 대신 인생 살면서 한번쯤 고난을 당한 이들이라면 드라마에 쉽게 공감하며 수삼을 '중독성 드라마'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③ 대가족 시스템이 일으킨 사람 사는 재미

언제나 갈등만 있었다면 드라마가 아닌 사회고발 재현 프로그램에 가까웠을 터. 하지만 수삼은 적절하게 가족끼리 화해하는 모습을 배치함으로써, 중년층 시청자들로부터 "저게 바로 사람 사는 맛"이라는 탄사를 불러일으켰다.

당초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갈등은 시청자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갈등 소재는 반드시 해피엔딩으로 봉합되게끔 스토리 라인이 설계됐고 끊임없는 롤러코스터식 전개로 시청자들에게 인생의 묘미를 안겨줬다.

수삼은 막장 소재에 대한 비판이 비등해진 3월말부터 갈등이 해소될 기미를 보이자 순식간에 착한 드라마로 변신했다는 비평이 쏟아졌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내준 대가족 안의 인간관계는 자녀를 서울로 떠나보낸 노년층들의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다.

④ 빠른 갈등해소, 한 박자 빠른 전개

하지만 이 드라마의 진정한 미덕은 막장소재나, 현실감 물씬 풍기는 연기자들의 연기가 아니다. 오히려 자극적 소재들이 빠르게 교체되는 속도감에 있다.

만일 사기피해나 고부갈등 같은 우울한 주제들이 한달씩 계속된다면 그 우울함에 질식된 시청자들을 빠르게 경쟁채널로 이동할지 모른다.

이를 간파한 수삼은 단 1주(2회 분량)만에 갈등이 발생하고 해결되는 빠른 스토리 전개를 선보이는 현명한 전략을 발휘했다. 토요일 단 하루만 긴장하고 일요일 저녁을 기다린다면 순식간에 갈등이 해소되는 카타르시스를 맛보는 방식이 그것이다.

그러다 보니 수삼은 언제 보더라도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유연성을 갖게 됐고 빠르게 새로운 시청자들이 유입될 수 있었다. 또한 우울한 막상 소재로 채워졌음에도 그 갈등이 해결되는 맛에 시청자들은 중독될 수밖에 없었다.

KBS2 \'수상한 삼형제\' 드센 시어머니역 이효춘 인기 드라마 KBS2 ‘수상한 삼형제’에 출연하는 탤런트 이효춘 씨. 그는 대한민국 시어머니들의 응원이 높다고 말한다.
KBS2 \'수상한 삼형제\' 드센 시어머니역 이효춘 인기 드라마 KBS2 ‘수상한 삼형제’에 출연하는 탤런트 이효춘 씨. 그는 대한민국 시어머니들의 응원이 높다고 말한다.

⑤ 늙은 어미가 꼭 하고 싶은 표현들, 일종의 대리만족

"다 꼴 보기 싫어…집에서 할일 없이 빈둥거리는 모습도 보기 싫고, 혼자서 김치 갖고 밥 먹는 모습도…콱 나가서 죽어버렸으면 좋겠어…"(5월29일 전과자가 남편을 구박하며)

전과자 역으로 열연중인 배우 이효춘(60)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드라마 배역에 대해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당부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당당한 자기 옹호도 잊지 않았는데 "요새 며느리에게 떵떵거리고 할 말 다하는 시어머니가 어디 있느냐"며 "시어머니들은 전과자를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시어머니들만큼은 자신의 속내를 대신 발언해 주는 전과자를 좋아한다는 얘기다.

일견 물질만능주의 속물로만 채워진 이 드라마의 출연진은 우리 맘속에 꼭꼭 숨겨진, 속되지만 현실적인 얘기들을 온 가족 앞에 처절하게 털어놓는다. 그 모습은 일견 '패륜아'와 '망나니'의 경계선에 서 있다고 할 정도로 추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절대로 이 작품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그 표현이 시청자들에게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구나' 하는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수삼은 한국형 가족 치유드라마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바로 이 대목이 수삼의 미덕이면서도 폐해로 연결되는 지점일 것이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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