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309)

  • 입력 1999년 12월 29일 13시 22분


이거 놔. 느이들두 다 개새끼들야.

주방쪽에서 여자가 달려 나오고 주인 남자는 아내를 말리고 하더니 여자가 제 남편을 밀쳐내고는 앞으로 나섰지요.

어디 와서 행패야. 술을 마시려면 곱게 마셔야지. 올 때마다 주정을 하구 난리야, 난리가. 어서 가라구!

그랬더니 그 사내가 의외로 무너지는 것처럼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뜨렸어요.

내 마누라, 내 새끼 내놔, 내노란 말야.

어이구 속 터져. 지가 저질러 놓구 왜 여기 와서 청승이야.

여자가 팔짱을 끼고 서서 비양거리자 사내는 갑자기 식탁 위의 음식이 담긴 그릇이며 술 병을 집어 던졌어요.

우리 자리에도 뭔가 날아왔고 바닥에 떨어져 깨어지는 소리가 요란했지요.

이 선생과 나는 다행히 마주보고 있어서 얼김에 상체를 숙이며 엎드렸지만 맞은편의 신씨 부부는 날아온 냄비에 얻어 맞고 국물과 음식찌꺼기로 옷이 범벅이 되어 버렸어요.

이거 뭐야 도대체….

신씨가 마주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고 이 선생이 그를 잡아 앉혔어요.

취한 사람하구 무슨 시비를 하니. 휴지루 닦아라.

주정하는 사내의 일행인 안경쟁이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사과를 했어요.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뭘해요, 어서 끌어내요.

여자가 주인 남자에게 말했고 그는 안경과 더불어 사내의 팔을 잡고 질질 끌어내더군요. 사내는 끌려 나가면서 소리를 질렀어요.

이 나쁜 놈들아, 내 식구 내놔라.

그런데 이 식당에서는 무슨 사연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어요. 주인 여자가 끌려나가는 사내의 뒷통수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거든요.

가슴에 손을 얹고 찬찬히 생각해 봐. 그게 누구 탓인가.

에이 오늘 재수 옴 붙었네.

투덜거리며 들어선 주인은 뒤늦게 물수건을 가지고 우리 자리로 왔습니다. 우리들 보다는 여기 온지 몇 해 되던 신씨가 그에게 물었어요.

저 사람 알아요?

아다 뿐이요? 우리 집에 벌써 몇 해째 단골이었는데.

하다가 그는 아내 쪽을 힐끗 보고 나서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어요.

저 사람 저래 뵈두 많이 배운 사람이오. 여기서 공부 다 마쳤소.가족들 솔가해서 이북 넘어갔다가 몇 달 만에 혼자 탈출해 나왔어. 부인이 아주 참했는데 우리 집 사람두 잘 아는 사이지.

신씨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나두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거 같은데. 가서 보니까 생각보다 많이 틀렸겠지. 지식인들 순진하니까.

혼자 잘 살려구 넘어가구 넘어오면 안되지. 사람이 얼마나 죽었는데….

이 선생이 중얼거렸어요. 식당에서 나온 뒤 신씨 부부와는 쿠담에서 헤어지고 우리는 분데스 알레 쪽으로 몇 블록 함께 걸었어요.

집에까지 바래다 줄까?

아니, 나 여기 어디서 타구 혼자 갈래요.

그는 머뭇거리다가 나와 함께 지하철을 탔어요. 그가 먼저 내리며 말했죠.

내일 전화 할게요.

나는 혼자서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러저러한 일상이 지나가고 어찌된 건지 송영태는 다시 전화하지 않았구요. 나는 이 선생과 함께 서독 쪽으로 자동차 여행을 갔었어요. 하이델베르크도 갔고 바다를 보러 함부르크에도 갔죠.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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