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264)

  • 입력 1999년 11월 5일 20시 14분


삼만원이 다 나가 버린다. 그래도 내 손으로 돈을 주고 물건을 샀다.

자아 오늘도 무사히 일과 끝이야.

주임이 시계를 보면서 말했고 양복이 덧붙였다.

얼른 집으루 갑시다.

난 오늘 외박할 거야.

점퍼가 말하자 주임이 물었다.

소에 돌아갈 때까지 근무 중인데 어딜 나간다구 그래?

아니 그럼 우리두 거기서 자야돼요?

숙직실이 어때서… 출장비 아껴야지. 근처에 나와서 한 잔 하는 건 괜찮겠지만.

나도 그제서야 주임에게 묻는다.

어디 또 갈 데가 있습니까?

아 모르고 있었나? 규정상 숙박은 교도소에서 하기루 되어 있어. 그 대신 내일은 기대를 해두 좋을 거야.

내일 돌아가지 않나요?

페방 전까지만 돌아가면 된다구.

일행은 다시 택시를 잡아 탔다. 앞자리에서 주임이 기사에게 말했다.

안양으루 갑시다.

택시 기사가 뒷거울을 통해 우리를 힐끗 건너다 보면서 말했다.

안양 어디쯤요?

점퍼가 말했다.

교도소요. 지금 우린 호송 중이니까 좀 밟으쇼. 교통은 책임질테니.

나는 택시 뒷자리에서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앉으니까 처음 구치소로 넘어가던 생각이 났다. 그 때는 밤이었고 비가 내렸다. 손목을 조여오는 수갑이 몹시 차갑게 느껴지던 생각이 난다. 정문 앞에 내려서 교도소의 샛문을 지나 표백된 것처럼 새하얀 바깥 담장의 안으로 들어서자 밥 냄새가 담장 안쪽에서 풍겨왔다. 스피커에서는 마침 일과 끝 나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칼처럼 맞춰 왔구나.

다시 두 번째의 담장을 지나 본관 건물로 들어선다. 보안과에 들어서니 야근조와 주간조가 교대하고 퇴근 준비 하노라고 법석이었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 무슨 장사치들처럼 우리는 서서 기다렸다. 주임과 계장이 안에서 나왔다. 계장이 서류를 들고나와 나를 훑어 보고는 주임에게 물었다.

저녁 멕였어요?

시간이 별루 없어서요. 여기 직원 식당에서 국밥이라두 하나 시켜 주면 좋겠는데.

그러지 뭐. 하여튼 접견실루 데려가서 밥 멕이구 집어 넣도록 해요.

계장이 나에게 교도 한 사람을 붙여 주었고 주임은 내게 말했다.

오늘 피곤할테니까 저녁 먹구 들어가서 일찍 쉬어. 낼은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점퍼와 양복은 소파에 앉은채로 손을 들어 보였다. 나는 교도를 따라 이층으로 올라갔고 탁자와 소파만이 있는 특별 접견실로 들어섰다. 젊은 교도는 나에게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다만 국밥을 시키는 전화를 하고나서 한마디 물었을 뿐이다.

뭐요… 귀휴요?

아뇨 사회참관입니다.

내가 우거지 국밥에 깍두기를 넣어 먹고있는 동안 그는 무슨 외국어라도 배우는지 작은 녹음기를 한 손에 들고 이어폰을 꽂아 듣고 서있었다. 그가 입 속으로 중얼거려 보기도 한다. 식사를 마치자 그는 나를 앞세웠다. 그가 짤막한 단어로 나를 몰고 갔다. 앞으로, 좌로, 우로, 거기 서. 내가 간 곳은 접견실 부근에 있는 만기방이었다.

<글:황석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