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도서관]‘나’의 삶에 나타난 ‘너’, 동성 간의 우정과 애정 사이…‘첫사랑’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2일 16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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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너는 나를 깊이 안았다.

“나도.”

지나가던 아이들이 우리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지옥의 빵공장에서 빵트럭이 쏟아져나오고 딴 세상 바다에선 고래들이 펄쩍 뛰어오르던 그때, 나는 비로소 내가 사내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석제 ‘첫사랑’에서
‘첫사랑’ 의 작가 성석제 씨 동아일보 DB
‘첫사랑’ 의 작가 성석제 씨 동아일보 DB
성석제 씨의 입담을 기대한다면, 배신이다. 그런데 멋진 배신이다. ‘첫사랑’은 시골 중학생 소년 ‘나’와 ‘너’의 이야기다.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며 악을 쓰고 공부하는 ‘나’, 그런 ‘나’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는 학교의 싸움꾼 ‘너’. 둘의 묘한 감정은 동성 간의 우정과 애정 사이를 오간다.

‘첫사랑’은 성석제 씨 특유의 유머가 섞여 있긴 하지만 웃음기 가득한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유달리 애잔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소설이다. 작가는 ‘동성애’라는 코드를 썼지만, 이건 이른바 ‘불온함’의 대표격으로 읽힌다. 정해진 규율에 따라 생활하던 아이들은 그때껏 학교(혹은 사회)가 넘지 말라고 쳐둔 담장을 불온하게 넘어서면서 성장한다. ‘나’도 ‘너’와의 애틋한 불온함을 겪으면서 사내가 된다.

‘첫사랑’은 성석제 씨가 소설가의 이력을 시작했던 때에 발표했다. 인용한 문장은 졸업식 날 만난 ‘나’와 ‘너’가 포옹하고 헤어지는 장면이다. 그는 소설을 쓰기 전 시인이었는데, 시인이었던 때로부터 멀지 않아서인지 ‘첫사랑’은 시적 감수성이 풍부하다. 특히 ‘첫사랑’의 마지막 문장은 ‘시인 성석제’가 썼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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