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어깨 위 삶의 무게가 당신을 빛나게 할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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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8일 화요일 비. 택시의 빛.
#245 Coldplay ‘Trouble’(2000년)

15일 서울에서 만난 콜드플레이의 리더 크리스 마틴. 현대카드 제공
15일 서울에서 만난 콜드플레이의 리더 크리스 마틴. 현대카드 제공
‘10년 뒤. 그러니까 2010년에 나는 뭘 하고 있을까. … 살아 있을까?’

이런 생각도 꽤 자주 했으니 서기 2000년의 난 그다지 유쾌한 사람이 아니었다. 군대에서 여자친구와 헤어졌고 제대는 했지만 복학할 돈이 없었다. 하고 있는 메탈 밴드는 제자리걸음이었고. 낮에는 D시의 레코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무렵 ‘Parachutes’(사진)가 나왔다. 콜드플레이의 데뷔 앨범. 지하상가에 있는 B레코드점에 출근하면 셔터 올리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음반유통사에서 들어온 박스를 뜯어 그날 나온 신보를 확인하고 분류해 진열하는 것이었다. ‘핑크플로이드와 라디오헤드의 만남.’ 그 음반에 대한 음반사의 설명서엔 분명 사람을 혹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퇴근길. 버스가 끊긴 늦은 밤에 O읍으로 향하는 합승택시 뒷좌석은 드라이브하기 쾌적한 곳은 아니었다. D역 앞에 선 택시 뒷자리에 올라타면 옆자리는 대개 낯선 취객의 몫. 그에게서 나는 달콤하고 쾨쾨한 술 냄새를 40분은 견뎌야 집에 닿았다.

도시의 가로등, 그 귤색 눈물의 잔 같은 것들이 필름처럼 차창을 스치는 동안 이어폰 속 ‘Parachutes’의 세계로 들어갔다. ‘거미줄에 걸려버렸어. 발버둥쳐보지만 작은 거품 속이야. 당신을 아프게 하려던 건 정말 아니었어.’ 크리스 마틴의 먹먹한 목소리와 피아노 타건이 이끄는 ‘Trouble’이 가깝고 먼 어딘가로 내 손목을 자꾸만 잡아끌었다.

지난 토요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의 작은 대기실에서 마틴을 만났다. 그는 호기심이 많아서 궁금한 게 떠오르면 인터뷰를 끊고서라도 역으로 질문하는 스타일이었다. “근데 ‘강남스타일’ 있잖아요. 그 노래가 한국 사람들한테는 대체 어떤 느낌인 거예요?” 내 무선키보드를 보고는 “다른 나라에선 그렇게 타이핑하는 기자 못 봤는데 신기하다”면서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고는 이것저것 또 묻는다.

그날 밤 환상 속에서 난 D역 앞에 섰다. 검고 찬 밤공기 위로 흰 입김을 내뿜으면서 길가에 선 노란 차에 올라탔다. 합승택시의 뒷좌석.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고단해 보이는 청년이 하나 앉아 있다. 이어폰을 끼며 차창 쪽으로 몸을 뒤트는 그에게 문득 말을 걸고 싶어졌다. 잠시 주저했다. 무대 위 배우의 독백처럼. 17년 전의 나를 향해 나직이 속삭였다.

‘어깨를 누르고 있는 삶의 무게가 당신을 다이아몬드로 만들 수도 있어. 그리고 언젠가 그를 만나게 될 거야.’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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