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작은 정원 큰 행복]그 놈의 연가시 때문에 꼽등이는 억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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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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꼽등이
얼마 전의 일입니다. ‘귀뚜라미 키우기’를 기사로 쓰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기사와는 좀 다르지만 여하튼 자연친화적이란 점에서 ‘정원 가꾸기’와 맥이 닿는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도 재작년 저희 아이들과 직접 귀뚜라미를 키워봤는데 반응이 꽤 좋았습니다.

인터넷을 뒤져 벌레잡이 덫을 만들었습니다. 쥐포를 미끼로 아파트 단지의 자전거보관소 주변에 덫을 놓았지요. 3시간 만에 귀뚜라미 1마리와 꼽등이 1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시기가 너무 늦은 것을 깜빡한 것입니다. 귀뚜라미는 보통 10월 말 정도에 번식을 한 후 바로 죽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귀뚜라미를 잡더라도 얼마 키우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 꼽등이가 무서우세요?

하지만 꼽등이를 보니 다른 이야기를 해 드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요즘 학생들은 꼽등이를 보면 거의 ‘경기’를 일으킵니다. 꼽등이를 ‘악의 화신’이나 ‘엄청난 해충’ 정도로 알고 있더군요. 인터넷에서 꼽등이를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더 엄청납니다. 꼽등이 죽이기 게임, 10분마다 번식, 수천 마리 꼽등이의 아파트 습격 등의 이야기가 수도 없이 올라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꼽등이는 발로 밟거나 살충제를 뿌려도 죽일 수 없고,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해 순식간에 온 집안을 가득 채우며, 병균까지 옮기는 무시무시한 해충이란 겁니다.

페트병으로 만든 벌레 덫. 물고기를 잡는 통발과 원리가 같다.
페트병으로 만든 벌레 덫. 물고기를 잡는 통발과 원리가 같다.
국내 유명 해충방제업체 세스코에 문의를 해 봤습니다. 세스코 기술연구소로부터 “1년 전부터 이상 이슈화가 됐지만 꼽등이 자체는 사람에게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얘기를 듣고 보니 꼽등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억울한 곤충이더군요. 꼽등이는 주로 습한 흙에다 알을 낳아 집안에선 그 수가 잘 늘어나지 않습니다. 살충제를 뿌려도 소용없다는 것 역시 사실이 아니더군요. 다만 모기나 파리 같은 소형 해충용 살충제는 보통 때보다 많은 양을 뿌려야 한다고 합니다. 꼽등이(40∼50mm)는 메뚜기(10∼30mm)나 귀뚜라미(15∼20mm)보다 덩치가 크기 때문입니다. 물론 발로 밟으면 바로 죽습니다.

○ 곤충 자살하게 만드는 연가시


세스코에선 꼽등이가 ‘공포의 대상’이 된 이유로 연가시란 기생충의 존재를 들었습니다. 연가시는 회충이나 지렁이 모양의 유선형 동물로, 그 유충이 메뚜기목 곤충에 기생합니다. 모양이 좀 많이 징그럽지요. 연가시는 원래 물에서 사는데, 습기를 좋아하는 꼽등이가 물가에서 먹이활동을 할 때 연가시 알이 체내로 유입되는 일이 간혹 있습니다. 사람이 이런 꼽등이를 밟아 죽였을 때 연가시 유충이 꿈틀거리면서 기어 나옵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꼽등이까지 혐오하게 된 것이지요.

연가시 유충은 흥미롭게도 어느 정도 자라면 꼽등이 같은 숙주 곤충을 조종합니다. 조종당한 숙주 곤충은 물에 뛰어 자살하게 되지요. 그러면 연가시가 곤충의 몸에서 빠져나와 물속에서 성충으로 살아갑니다. 연가시 유충이 어떻게 곤충을 조종하는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부 연구에서는 연가시가 곤충의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단백질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위키백과, ‘이기적 유전자’ 참조)

세스코 기술연구소에 따르면 연가시는 사람 등 포유동물에겐 기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모든 꼽등이가 다 연가시에게 감염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꼽등이가 다른 벌레보다 더 더러운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실외에서 병균 등을 묻혀올 수도 있는데 이것은 다른 벌레들도 마찬가지라고 하네요.

혹시라도 귀뚜라미를 키우고 싶으신 분들은 곤충이나 열대어를 파는 가게(또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먹이용으로 파는 것을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파는 귀뚜라미는 열대 원산이라 1년 내내 번식을 거듭합니다. 귀뚜라미는 습기 없이 건조하게 키워야 기생충이 생기지 않습니다. 참, 벌레 덫은 여러 가지 용도로 1년 내내 활용할 수 있습니다. 집에 들어온 꼽등이나 바퀴벌레를 덫으로 한 번 잡아보세요.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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