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엽교수 이미지로 보는 세상]수줍은 裸身, 당당한 맨몸

  • 입력 2001년 7월 24일 18시 48분


‘벌거벗은’을 뜻하는 영어 단어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네이키드(naked)’이고, 다른 하나는 ‘누드(nude)’다. 둘 모두 나체의 상태를 의미하지만, 전자가 자신이 벗었음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수줍은 벗음이라면 후자는 자신의 벗은 몸매를 과시하고픈 뽐내는 벗음이다.

서양 미술에서 수줍은 벗음인 ‘네이키드’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예는 아담과 이브를 소재로 삼은 작품들이다. 선악과를 먹은 후 자신들의 벗은 몸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무화과 잎으로 가리고, 마침내는 하나님의 질책을 들으며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는 운명에 처하게 되는 아담과 이브의 나체가 수줍은 상태의 벗음이라는 점은 당연하다.

다른 한편, 뽐내는 벗음인 ‘누드’의 예로는 ‘파리스의 심판’이라는 제목으로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화가들에 의해 그려진 일련의 작품들을 들 수 있다. 예술의 전당에서 요즈음 열리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전’에서도 그 일면을 확인할 수 있는 이 그림들은 그리스 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옛날 옛적에, 불화(不和)의 여신 에리스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초대받지 못한 결혼식에 불쑥 나타나 사과 하나를 슬쩍 던진 후 사라져버렸다. 이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쓰여 있었다. 제우스의 본처인 헤라,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미네르바),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비너스)가 사과의 소유권을 결코 양보하지 않고 다투었다.

골치가 아파진 제우스는 트로이의 왕자로 태어났지만 현직은 목동인 파리스에게 최종 결정권을 부여한다. 세 명의 여신은 파리스에게 자신을 선정해 준다면 보답을 하겠다고 약속한다. 헤라는 제우스의 본처답게 권력을, 아테나는 지혜를,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답례하겠노라고 말한 후 각자의 자태를 한껏 뽐낸다.

이런 까닭에, ‘파리스의 심판’이라는 제목의 그림들은 파리스 앞에서 미의 경연을 펼치는 세 여신의 모습을 공통적으로 담고 있다. 물론, 르네상스를 거쳐 현대에 들어올수록 벗은 몸을 뽐내는 누드적 경향이 강해지면서 세 여신이 펼치는 그림 속 경연의 현장은 한층 농염해진다.

결국, 누가 미스 그리스 여신에 뽑혔을까?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 주고, 보답으로 아프로디테는 스파르타 왕의 아내인 절세 미녀 헬레나를 파리스의 품에 안겨준다. 파리스는 예쁜 신부와 함께 조국인 트로이로 금의환향한다.

그렇지만 아내를 빼앗긴 스파르타 왕 및 경선에서 탈락한 헤라와 아테나는 격분하여 그리스 연합군을 이끌고 트로이로 밀려든다. 트로이 전쟁의 시작이다. 이제 신과 신, 인간과 인간, 신과 인간 사이의 전쟁이 십여 년간 계속된다. 한 여신이 뿌려놓은 조그마한 불화의 씨앗이 에게해 전역을 증오로 물들일 줄 제우스인들 어찌 짐작했으랴.

김진엽(홍익대 예술학과 교수)jinyupk@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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