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배의 神品名詩]무량수전(無量壽殿)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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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 무량수전
무량수전(無量壽殿) ―문인수(1945∼)

나는 바람이 되어 무량(無量)하다.
용의 눈을 마음에 박으니
저 한꺼번에 꿈틀대는 녹음, 잎새 잎새들이 전부 비늘이다.
어느 날은 또 바위가 되어 도적떼를 물리치고
공중에 사뿐 앉아 그대를 지키나니.

“저 이마에 흐르는 땀 봐라.”

─의상대사는 마침내 이 절(浮石寺)을 마무리 지었다. 무량수전에, 극락정토 한복판에 아미타여래불을 모신 일!

내 이름은 선묘, 지금도 바람이다.
화엄 아래 무량, 무량한 여자다.


무량하도다. 부처님의 크게 사랑하시고 크게 용서하심이여. 신라불국의 융성이 해를 가릴 때 두 큰 스님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공부를 더하겠다고 당나라 가는 길에 나섰다가 원효는 직산에서 해골바가지 물을 마시고 ‘만법은 오직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닫고 돌아섰으나 의상은 당진에서 배를 타고 당나라에 가서 10년 불법을 닦고 돌아와서 문무왕의 명을 받들어 첫 불사를 일으킨 일이 부석사를 창건하고 화엄의 진리를 강론하던 것이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봉화산부석사연기’에 따르면 절의 개창은 문무왕 16년(676년)이라 적혀 있으나 무량수전(국보 18호)과 앞에 서 있는 석등(국보 17호)은 1041년부터 부석사에 와서 화엄종통을 이어 받든 원융국사가 중창할 무렵에 세워진 것이라 한다. 무량수불인 아미타불(국보 45호)을 봉안하고 있는데 이 무량수전은 배흘림기둥으로 이름이 높거니와 누하진입(樓下進入) 방식의 열림과 닫힘의 공간이며 신라에서 고려로 이어지는 사찰의 건축양식에서 독창성과 완벽미를 고루 갖추고 있다. 전각에는 내부에 석가모니불의 수인(手印)인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불상을 모신 것도 범상치 않은 일이다. 더욱이 부석사에는 의상을 연모하여 바다의 용이 되어 따라온 선묘(善妙)가 의상을 보호하며 절을 짓는 일을 도왔고 숨어있는 도적 떼를 바위로 변하여 물리쳤다는 설화가 있어 이 절을 찾는 이들의 가슴에 한 덩이 불씨를 심어준다. 무량수전 서쪽에 부석(浮石)이라 새겨진 바위가 있는데 바로 선묘의 화신이라고 한다.

시인은 부처님 자비의 두 손이 한 여자의 사랑을 천년만년 허물어지지 않게 받쳐준 것에 그저 ‘무량!’만을 외친다. “내 이름은 선묘, 지금도 바람이다/화엄 아래 무량, 무량한 여자다”라고. 아아 선묘가 그리운 오늘이여, 사랑이여.

이근배 시인·신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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