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넙치 대짜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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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광어(넙치).’ 전남 해남의 한 횟집에서 본 차림표다. 비록 괄호 속이었지만 넙치를 보니 반가웠다. 우리말 넙치가 한자말 광어(廣魚)에 밀려나는 게 아쉬웠기 때문. 불현듯 어느 선배가 들려준 ‘멍게와 우렁쉥이’ 얘기가 생각난다.

멍게가 우렁쉥이의 사투리이던 시절, 어느 음식점 차림표에 ‘멍게’와 ‘우렁쉥이’가 나란히 있는 게 아닌가. 까닭을 묻자 주인은 “멍게를 찾는 손님도 있고 우렁쉥이를 찾는 손님도 있어 우리 가게엔 둘 다 있다는 뜻으로 써놓았다”고 하더란다. 말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언중이라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주는 절묘한 선택이었다. 지금은 둘 다 표준어이지만 멍게가 더 자주 쓰인다. 북한 조선말대사전에는 멍게는 없고 ‘멍기’와 ‘우릉성이’만 있다.

아 참, 넙치와 가자미를 ‘비목어(比目魚)’라 한다. 넙치는 왼쪽에, 가자미는 오른쪽에 눈이 몰려 있어서다. 옛날에는 눈이 하나밖에 없는 걸로 착각한 건 아닐까.

횟집에 가면 무얼 먹어야 좋을지 고민에 빠지는 이가 많다. 좋은 메뉴가 있다. 이름하여 ‘모둠회’. ‘모듬회’라 하는 이가 많지만 ‘모둠회’가 옳다. 어원을 보면 ‘모듬’ ‘모둠’ 둘 다 사용할 수 있지만 국립국어원은 ‘모둠’을 표준어로 정했다. ‘모둠냄비’ ‘모둠발’ ‘모둠밥’ 등 합성어가 오래전부터 쓰여 왔기 때문.

‘大자 냉동꽃게, 사고 보니 中자.’ 얼마 전에 본 어느 신문 제목이다. 언뜻 보면 발음도 그렇고 한자어 대(大)와 중(中)에 이끌려 맞을 성싶지만 틀린다. 어떤 물건의 크고 작음을 일컬을 땐 대·중·소에 ‘-짜’가 붙는다. 그러니 대짜, 중짜, 소짜가 맞다. ‘어원이 분명치 않은 말은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는 맞춤법 규정 때문이다. 하지만 글자의 크기를 나타낼 때는 ‘-자’가 맞다. ‘-짜’와 달리 어원이 분명해서다. 큰 글자는 ‘대자(大字)’, 작은 글자는 ‘소자(小字)’로 적어야 한다. ‘큰대자(-大字)’는 ‘술에 취해 큰대자로 뻗었다’처럼 ‘큰대자로’라는 형태로 주로 쓴다.

‘-산(産)’도 가려 써야 할 표현. 지역을 나타내는 말 뒤에 붙어 거기에서 나온 물건을 뜻한다. 국내산, 미국산처럼 써야 한다. ‘수입산’처럼 잘못 쓰기 쉬운데, ‘수입’은 지역이 아니므로 ‘수입한 물건’은 ‘외국산’ 또는 ‘수입품’이라고 해야 옳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광어#넙치#멍게#우렁쉥이#모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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