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내 사랑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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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부부싸움을 한 뒤에 아내는 6개월 된 아기를 안고 집을 나왔다. 그러나 막상 집을 나오니 갈 데가 없었다. 해외근무 중인 남편을 따라 외국의 낯선 도시에서 살고 있으니 하룻밤 신세질 곳조차 없었다. 비행기를 타고 친정으로 확 가버릴까 생각했지만 그건 뒷감당이 어렵고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가는 건 자존심이 상하니 진퇴양난이었다. 그때 번쩍 떠오른 아이디어가 호텔이었다.

특별히 아는 곳이 없어서 유명한 일류 호텔을 찾아갔다. 예약손님이 아닌 데다 여행가방도 들지 않고 아기만 달랑 안고 방을 달라는 젊은 여자가 안돼 보였는지 이게 웬일, 호텔 프런트에서는 친절하게도 객실을 업그레이드시켜 주어 난생처음 클럽룸이라는 고급 객실에 머물게 되었다. 55층 호화로운 방에서 내려다보는 중국 상하이의 야경은 혼자 보기가 아까웠다. 더구나 58층 라운지에 올라가 얼마든지 먹고 마실 수 있는 특전이 있었다.

“그런데 엄마, 그 다음에 어떻게 됐는지 알아?”

상하이에 사는 딸이 킥킥거리며 이웃 엄마의 이야기를 전했다.

“글쎄, 공짜를 혼자 누리기가 너무 아까워서 남편을 불렀대.”

딸의 말에 나도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호텔에 왜 왔는지 초심을 잊어버리고 아까운 마음에 남편을 불렀다니, 집에서 좌불안석이던 남편 또한 헐레벌떡 달려와 얼싸 좋다 생각지도 못한 호사를 누리며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임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김용택 시인의 “내 사랑은”이란 시가 떠올랐다.

“아름답고 고운 것 보면/그대 생각납니다//이것이 사랑이라면/내 사랑은 당신입니다….”

‘사랑은’으로 시작하는 숱한 시와 명대사가 있지만 이처럼 쉽고 명확한 정의가 있을까. 좋은 거 보면 생각나고 같이 나누고 싶다면 그게 사랑이라는 말은 참 간단하면서도 정곡을 찌른다.

내 주변에는 부부싸움을 하면 한 달씩이나 서로 말을 안 하고 지내는 부부가 있다. 별거 아닌 다툼이라도 금방 풀지 않으면 나중엔 오기가 생겨서 ‘누가 이기나 해보자’가 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 젊은 아내도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면 그렇게 쉽게 싸움이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호텔의 서비스에 홀려서 그랬든 말든 남편에게 먼저 전화를 했기에 결국 해피엔딩이 되었다.

혹시 당신도 지금 오기로 버티고 있다면 먼저 통 크게 져주면 어떨까. 부부든 연인이든 친구든 적어도 이해를 넘기지는 말자. 내 사랑은 당신이니까.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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