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신년운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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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가 되면 신년운수를 보려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나는 그런 것에 시큰둥해서 한 번도 점을 쳐본 적이 없다. 그런데, 가끔 주변에서 유혹이 날아든다. 너무너무 잘 맞히는 족집게니까 심심풀이로 함께 가보자는 것이다. 지난해 정초에도 용한 점쟁이가 있으니 함께 가보자는 후배의 전화를 받고 조금 ‘흔들’ 했다. 그러나 점쟁이와 예약한 시간이 다른 약속과 겹친 데다 아직은 낯선 사람 앞에 앉아 이러쿵저러쿵 나의 미래를 듣는 일이 쑥스러워서 후배에게 대신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는 내 한자 이름과 생년월일에 태어난 시까지, 휴대전화에 문자로 찍어 주었다.

전언에 따르면, 처음에는 얼굴도 안 보고 봐줄 수 없다고 거절하다가 마지못해 말을 꺼냈다는데, 여러 소리 중에 내 귀를 솔깃하게 만든 말은 “올해 귀인이 나타난다”였다. 근데 참 요상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사람을 만날 때마다 ‘혹시, 이 사람이 나의 귀인?’ 하는 생각이 슬금슬금 드는 게 아닌가. 특히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아주 오랜만에 뜬금없이 나타나 일이 척척 풀리면 ‘점쟁이가 말한 귀인이 바로 이 사람?’ 하는 생각이 들어 혼자 실없이 웃곤 했다.

그렇게 귀인이 누굴까 궁금증을 갖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사람들을 더 자세하게 살펴보게 되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노래한 나태주 시인의 ‘풀꽃’처럼 사람들을 자상하게 들여다보니 그렇다, 모두가 귀한 사람이었다. 장미와 백합만 꽃이 아니라 풀꽃도 꽃이듯이 과연 귀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나를 스쳐갔거나 내 곁에 머물러 준 사람들이 결국은 모두 나의 귀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살아오는 동안 좋은 사람만 만난 것은 아니다. 마땅찮은 사람들도 많았다. 때로는 ‘저런 사람만 없으면 세상 살기가 좀 수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지나보니 모두 내게 필요한 사람이었다. 훌륭한 사람을 만나 배운 것도 많지만, 못마땅한 사람들로부터 깨친 점도 많기 때문이다.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라는 말이 있다. 걸림돌을 잘 이용하면 디딤돌이 되지만 아예 걸림돌조차 없으면 기회가 없다. 바람으로 항해하는 요트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역풍이 아니라 무풍이다. 역풍을 만나면 돛의 방향을 조정해가며 거슬러갈 수 있지만 바람이 전혀 없으면 조금도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 나와 동시대를 살면서 나를 조형해가는 데에 영향을 주는 주변사람들이 다 나의 귀인이 아니겠는가. 결국 나는 날마다 귀인을 만나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속으로 감탄했다. ‘과연 그 점쟁이, 참 용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나도 독자 여러분의 신년운수를 봐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내놓는 새해 점괘는 이렇다. “신년운수를 알고 싶으세요? 2013년 새해에는 여러분에게 틀림없이 귀인이 나타날 것입니다.”

윤세영 수필가
#신년운수#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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