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굴러온 공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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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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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을 한 친구 딸이 호들갑을 떨며 의사 선생님에게 이것저것 물었다고 한다. 뭘 먹이면 좋을까요? 영양제를 먹어야 할까요? 태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런데 선생님 왈, “그냥 세 끼 밥 잘 챙겨 먹어요. 그게 최고예요.” 친구는 그 정도 이야기는 나도 하겠다고 해서 함께 웃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말이 진리다.

얼마 전에 횡재를 했다. 느닷없이 은행에서 안내장이 날아왔는데 500만 원이 넘는 돈을 맡고 있다고 했다. 빌린 돈이 있다는 것보다는 낫지만 도대체 나도 모르는 돈이 있다니 어리둥절했다. 다행히 통장을 다 모아놓았기 때문에 죄다 조사를 해봤다. 1994년부터 11년 동안 통장에서 2만 원씩 인출된 기록이 있었다.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마 은행직원이 가입을 권유했을 것이고 월급에서 2만 원 나가는 것쯤이야 생각해서 동의한 모양이다. 2005년까지 11년 동안 통장에서 매달 2만 원이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무심하게 지나쳤다. 만기일이 지난 것도 모른 채 또 7년이 흘러 2012년 말에 은행에서 통보를 받은 것이다.

세상에, 고맙기도 하지,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계속 돈이 불어서, 계산이 서툰 주제에도 대강 따져보니 은행에 불입한 원금의 두 배가 넘는 돈이 되었다. 역시 시간은 돈이다! 이런 오묘한 이치를 모르고 이제까지 제대로 적금 한번 타본 적이 없다. 몇 푼씩 들어가는 적금은 2, 3년 모아봤자 큰돈이 안 되니 힘 팽기고 시시해서 들기 싫고, 단기간에 목돈을 만들고 싶은 생각에 덜컥 큰돈을 불입하는 적금을 들고는 감당이 안 되어서 중간에 해지하곤 했다. 그 시행착오를 몇 번 경험하고 나니 에이, 나는 적금 체질이 아니야, 포기해버렸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더니 경제활동이 다 끝나가는 나이에 이르러서야 깨달았다. 푼돈 모아 목돈이라는 말이 구호가 아니었다는 것을. 밥 세 끼 정성껏 찾아 먹는 것이 보약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동안 “거지도 죽을 때 제 돈 다 못 쓰고 죽는다. 주머니에 동전 몇 닢이라도 남아 있기 마련”이라는 말로 여유를 보이며 내 빈약한 경제관념을 합리화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새해 결심을 하나 했다. 10년짜리 적금을 들어야겠다고, 절대로 중간에 해지하지 않을 아주 작은 돈을, 그 돈이 인출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낼 액수를 약정해서 넣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전에는 스스로 핑계가 많았다. 10년 후면 인플레이션이 되어서 별 의미가 없다는 둥, 10년 후에 살아 있을지 어쩔지 모른다는 등등. 그런데 10년이 아니라 2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나는 살아 있고, 20년 동안 인플레이션이 적지 않았지만 푼돈으로 모은 돈은 공돈처럼 기분이 좋다는 것을 체험했다. 비단 돈뿐이겠는가. 어떤 일에서나 꾸준하면 그 결과가 크다는 것을 체험한 것, 이것이 나에게는 큰 횡재다.

신나는 공돈을 위하여 1월부터 10년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윤세영 수필가
#저축#적금#공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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