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의 시사讀說]히로시마 센티멘털리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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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70년 전 1945년 오늘은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이다. 사흘 후인 9일에는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다. 그리고 15일 정오 쇼와 일왕이 라디오방송을 통해 항복을 선언한다.


가해는 잊고 피해만 기억

당시 쇼와가 녹음한 선언 원본이 최근 공개됐다. 70년 전 그 녹음은 라디오 전파의 잡음이 심한 데다 난해한 한문 투여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내용보다는 신으로 추앙받던 일왕이 국민 앞에서 처음으로 말했다는 사실 자체가 패전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선명한 녹음에 기초해 현대 일본어로 풀어 쓴 전문(全文)을 보니 전쟁을 개시한 데 대한 반성은 전혀 없다. 오히려 일본의 독립과 동아시아 제국(諸國)의 안전을 위해 미국에 전쟁을 선포했다고 강변하고 있다. 항복의 계기는 ‘적국이 새로운 잔악한 무기(원자폭탄)로 죄 없는 사람들을 살상해 그 비참한 피해가 미칠 범위가 어디까지일지 몰라서’라고 돼 있다. 히로시마만 기억하고 히로시마 이전을 망각하는 일본인의 사고방식이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약 열흘 전 연합국의 포츠담 선언이 나왔다. 일본이 ‘전멸의 문턱(threshold of annihilation)’에서 벗어날 최후의 기회를 준다는 통첩을 보낸 것이었는데 일본이 응답하지 않아 원폭이 투하됐다. 올 5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05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포츠담 선언은 미국이 원폭을 투하해 일본에 참상을 일으킨 뒤 ‘어떠냐’고 일본에 내민 것”이라고 말한 것이 뒤늦게 논란이 됐다. 아베의 머릿속에 포츠담과 히로시마의 순서가 뒤바뀌어 있었다.

히로시마를 통해 가해의 역사는 잊고 피해의 역사만 기억하는 심리를 ‘히로시마 센티멘털리즘’이라고 불러보자. 흥미로운 것은 ‘히로시마 센티멘털리즘’이 아베 같은 일본 보수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본의 진보진영에서 ‘히로시마 센티멘털리즘’은 단순한 망각을 넘어 도덕적 반전을 꾀한다. 히로시마 피폭으로부터 반핵(反核)·평화의 도덕적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가해의 과거사가 주는 죄책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폐허가 된 히로시마 원폭 돔 앞에 서면 숙연해지지만 가해의 과거사는 알 수 없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버섯구름에서도 환경을 중시하는 메시지는 읽히지만 일본이 저질렀던 만행의 그림자는 찾을 수 없다. 최근 아사히신문이 히로시마 피폭을 2011년의 후쿠시마 원전의 비극과 연관해 다룬 종전 70주년 기획을 읽으면서도 비슷하게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가해의 과거사가 주는 죄책에서 탈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럼으로써 과거사는 똑같이 망각되고 마는 것이다.

일본, 값싼 感傷 벗어나야

히로시마에 인류의 보편적 심정에 호소하는 비극적 요소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히로시마는 나가사키와 함께 원폭이 실제로 투하된 지구상의 특별한 장소로 기억돼야 한다. 수만 명의 조선인도 함께 피해를 봤으므로 우리에게도 남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본은 ‘나도 피해자’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게 일본이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감상에 빠지지 않고 자신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직시할 때 성숙한 일본이 될 수 있고 히로시마도 반핵·평화의 상징으로 올바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히로시마#원자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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