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정양환]아시아 최고의 커플 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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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환 문화부 기자
정양환 문화부 기자
“이참에 앞으로도 쭉 안 했으면 좋겠네.”

결국 무산됐다. 지상파방송 연말행사인 ‘KBS 연예대상’ 얘기다. 1987년 시작했으니, 나름 30년 역사를 지녔건만. 끝내 장기 파업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의외로 반응은 잘됐단 분위기다. 위 인터넷 댓글은 양반이다. ‘연기대상 가요대상도 폐지해라’, ‘추억의 영화나 틀어 달라’. 공들인 제작진 노력도 무심하게. 방송가 시상식은 언젠가부터 천덕꾸러기가 됐다.

좋은 연기, 훌륭한 무대를 상찬하자는 자리가 어쩌다 이런 대접을. 한 드라마 PD는 “누워서 침 뱉기지만 방송국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며 “여러 차례 지적받았던 문제점들이 개선되지 않아 시청자가 실망한 것 같다”고 한탄했다.


뭐가 문제였을까. 첫째, 상의 지나친 ‘남발’이다. 지난해 MBC 연기대상 리스트를 살펴보자. 연기상이 부문별로 특별기획 연속극 미니시리즈 3가지나 된다. 또 이걸 각각 최우수연기상과 우수연기상, 황금연기상으로 나눠 놓았다. 다른 방송사도 거기서 거기다. KBS는 장편 중편 단편에 미니시리즈와 일일극까지 있다. SBS는 판타지와 로맨틱코미디, 장르드라마가 공존한다. 판타지가 장르에 속하지 않는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공동수상은 왜 이리 많은지. 혼자 받는 게 낯설어 보일 지경이다. 지난해 SBS 연기대상은 심지어 10명이 떼거리로 받는 ‘뉴스타상’ 덕에 모두 40명에게 골고루 상이 돌아갔다. 이 정도면 연기자로선 안 받는 게 서운하겠다. 한 방송작가는 “방송국과 연예인 소속사가 ‘수상’을 전제로 스케줄을 조정하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귀띔했다.

두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가 받을지 뻔하니 김이 샌다. 웬만큼 ‘급’이 되는 연예인은 뭔 상일지는 몰라도 분명 스테이지에 올라간다. 실제로 과거 한 여배우가 불참하자 ‘대상이 아닌 걸 알고’라는 뒷말이 무성했다.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연기 평가란 주관적 요소가 강해 원래 시상식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한국은 연기 외적인 흥행이나 인기도를 강하게 반영해 ‘사내 포상’이라 부르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본질적인 의문. 시청자는 비난하고, 내부에선 자성하는 시상식이 왜 지속되는 걸까. 해답은 방영 다음 날 시청률을 보면 나온다. 지난해 KBS 연기대상은 1부는 전국 기준 15.2%(닐슨코리아)였다. 종편과 케이블방송의 약진에 요즘 지상파 드라마나 예능도 한 자릿수 시청률이 허다한데. 다른 시상식 역시 10% 안팎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혹자는 ‘전파 낭비’라지만 방송국으로선 이런 ‘땅 짚고 헤엄치기’가 없죠. 회당 몇천만 원 받는 스타 수십 명을 거의 푼돈으로 3∼4시간씩 출연시킬 기회가 흔합니까. 시청률이 보장되니 광고나 협찬도 수월한데. 몇 해 전 논란이 커지니 미국 에미상처럼 통합 시상식을 치르잔 의견이 나온 적 있습니다. 당연히 안 되죠. 3사만 돌아가며 방송해도, 해마다 거둬들이던 수익이 확 깎이는데 누가 반기겠습니까.”(한 연예프로그램 CP)

누리꾼 바람과 달리, KBS 연예대상은 내년에 돌아올 게다. 실은 올해도 방송사마다 연기와 연예, 가요 대상을 치르니 평상시 9분의 8로 줄었을 뿐이다. 일개 방송사가 ‘아시아 최고의 커플 상’을 뽑는 희한한 광경은 또 벌어진다. 우리가 그날 TV 시상식을 보고 있는 한.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kbs 연기대상#kbs 연예대상 공동수상#땅 짚고 헤엄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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