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프리즘/권순활]‘일자리의 가장 큰 敵’ 허위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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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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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활 편집국 부국장
권순활 편집국 부국장
신세계백화점 의정부점이 내일 문을 연다. 40개 입점업체 직원 1500명을 뽑기 위해 2월 초 열린 채용박람회에 1만3500명이 몰려 화제가 됐던 점포다.

그때 일자리를 얻은 사람들은 백화점이 아니라 판매, 빌딩관리, 보안 등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많은 중소기업이 구인난에 허덕이는 현실에서 봉급만 놓고 보면 비슷하거나 더 많은 급여를 받는 직장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많은 구직자가 줄을 섰던 중요한 변수는 ‘신세계’라는 기업 브랜드의 힘이었다.

균형 잃은 대기업 담론


백화점 신설 점포에서 일하려는 구직자의 행렬을 취재한 신문 사진을 다시 찾아보면서 기업, 특히 대기업 때리기가 한창인 우리 사회를 생각했다. 요즘 한국에서는 대기업이 위축되면 중소기업인과 자영업자의 웃음꽃이 피고 일자리도 늘어난다는 식의 논리가 꽤 먹힌다. 고용과 투자 확대를 겨냥해 법인세율 인하 등 기업에 미소를 보내는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의 흐름과는 딴판이다. 일부 대기업 및 기업인의 일탈이나 과잉 행동의 위험성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일은 꼭 필요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우리 사회의 대기업 담론은 현저히 균형을 잃었다.

2000∼2010년 사이 30대 그룹 임직원 수의 연평균 증가율은 5.5%였다. 전체 임금 근로자 증가율 2.4%, 전체 취업자 증가율 1.1%를 훨씬 웃돈다. 대기업이 이윤만 챙기고 일자리 창출에 소극적이라는 주장을 무색하게 하는 통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이 고용 대란을 겪지 않은 데는 대기업들의 공이 절대적으로 컸다는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의 말도 우리가 잊기 쉬운 진실을 일깨워준다.

공무원 등 국민의 세금이 직간접적으로 투입되는 공공부문을 필요 이상 비대하게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민간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여 추가 노동수요를 만들어내는 것이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질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최선의 해법이다. 국내 대기업을 죽이지 못해 안달을 부리면서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심각한 허위의식이 느껴진다.

원래 허위의식이란 단어는 헝가리 지식인 루카치 등 마르크스의 후예들이 자본주의를 공격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다. 그러나 요즘 한국에서는 우파보다 좌파 진영에서 훨씬 자주 이런 모습이 발견된다. 수십억 원의 재산을 갖고 보통사람은 엄두도 못내는 큰돈을 들여 자식들에게 ‘국내외 고급 교육’을 시키면서 서민의 대변자인 양 행세하는 일부 정치인과 지식인이 대표적이다. 평소 대기업을 공격하다가 선거 때면 지역구에 그 기업들을 유치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놓는 행태도 마찬가지다.

사이비 선지자들을 경계해야


서비스업 규제완화를 둘러싼 해묵은 논란 역시 일자리 만들기의 가장 큰 적(敵)이 허위의식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서비스업이 경제 활력 회복과 고용 증대의 활로(活路)라는 점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어느 경제전문가는 “한 대형 병원이 세워진 뒤 생긴 신규 일자리가 약 8000개였다”고 전했다. 이런데도 서비스업 규제완화 말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물면서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말 젊은층 일자리를 걱정하고 있을까.

열반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에서 나온 니르바나 접근 방식이란 말이 있다. 이상적 기준이나 규범과 비교해 불완전한 현실을 고친다는 명목으로 대중을 현혹하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이런 광풍(狂風)에 사회가 휘말리면 훨씬 참담한 실패를 낳는다. 내거는 구호가 거창할수록 주장과 결과 사이의 괴리도 더 커진다. 인간의 복잡한 속성과 경제의 작동원리를 외면한 채 입으로만 지상천국을 내세우는 사이비 선지자들의 궤변에 휘둘리지 않고 현실의 바탕 위에서 대안과 해법을 모색해야 ‘최고의 복지’인 일자리를 더 늘릴 수 있다.

권순활 편집국 부국장 shkwon@donga.com
#경제 프리즘#권순활#취업난#구인난#대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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