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장대익]다윈 혁명, 끝나지 않았다

  • 입력 2008년 10월 27일 02시 58분


혹시 자신이 후대에 이름을 남길 것 같은 예감이 든다면 다윈을 벤치마킹하기 바란다. 1809년에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지성사를 뒤흔든 ‘종의 기원’을 딱 50세에 출간했다. 그러니 내년은 다윈 탄생 200년,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 되는 기념비적인 해이다. 그는 적어도 50년마다 인류의 축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다윈 탄생 200주년을 위해 벌써부터 전 세계가 술렁이고 있다. 대부분이 그가 지성사에 끼친 영향을 조명해보는 행사이지만 ‘다윈 특별전’처럼 대중과의 만남을 주선해주는 자리도 더러 눈에 띈다. 특히 내년 여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열릴 ‘다윈 페스티벌’에는 도킨스를 비롯한 다윈의 후예가 대거 참여하여 다윈의 변주곡을 들려줄 예정이다. 세계경제와 함께 불황의 깊은 터널을 지나는 학계와 출판계도 내년의 ‘다윈 특수’를 잔뜩 기대하고 있다.

무엇이 다윈을 이토록 친숙하게 만들었을까. 2005년은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100주년이 되는 해이면서 서거 50주기였다. 천재치고는 대중에게도 친근한 그지만, 그의 이론들은 보통사람을 늘 주눅 들게 만든다. 하지만 다윈은 다르다. ‘종의 기원’의 출간 전날, 그 책을 미리 읽어본 헉슬리의 탄식은 꽤나 유명하다. “이렇게 쉬운 설명을 난 왜 못했을까. 바보같이!” 다윈의 진화론은 초등학생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명쾌하다.

이론뿐이 아니다. 그의 삶에도 애정이 느껴진다. 실패와는 담을 쌓은 여느 무균 천재와는 달리 그의 생애는 우리네 인생살이와 다르지 않았다. 에든버러대 의대 중퇴와 낙향, 그리고 원인 모를 질병으로 인생의 쓴맛을 경험했고, 자신이 골몰해 온 문제에 해답을 써 보내 온 한 과학자의 편지를 받아본 후 좌절의 통곡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찾아온 기회를 덥석 물 수 있는 열정과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기회란 다름 아닌 26m짜리 비글호로 남미를 탐험하는 것. 5년간의 항해를 통해 그는 우리에게 발상 전환의 돛을 달아줬다.

그 발상의 전환이란 무엇인가. 사실, 종(種)이 진화한다는 생각 자체는 당시에 별로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에게 상을 줘야 하는 이유는 다른 두 가지다. 하나는 자연선택이라는 진화 메커니즘을 제시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나무가 가지를 뻗는 방식에 빗대 종 분화를 설명했다는 점이다. 다윈은 이 두 도구를 활용해 생명의 변화 방식과 다양성을 설명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동물원에 있는 침팬지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결코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됐고, 신의 특별한 설계를 이야기하지 않고도 자연계의 복잡하고 정교한 적응을 자연적인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있게 됐으며, 덜 복잡한 것으로 더 복잡한 것을 설명하는 비법을 터득했다.

하지만 다윈의 진화론도 부침을 겪으며 진화해 왔다. ‘종의 기원’ 출간 후 50년 동안은 되레 침체의 길을 걷다가 1930, 40년대에 유전학이라는 구원투수를 만나 부활했다. 또한 1970년대에는 세부 이론의 폭발을 경험했지만 불과 10년 전쯤에서야 발생학과 만나 진정한 통섭적 학문으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가 200년이나 지난 사람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혁명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다윈주의는 심리학, 경제학, 철학, 문학, 의학에 스며들어 지식의 정글을 선도할 강력한 잡종을 만들어냈다. 최근 각광을 받는 진화심리학, 진화게임이론, 진화윤리학, 다윈의학은 ‘종의 기원’에 뿌리를 두고 위로 뻗어나간 진화론의 잔가지이다. 이 가지는 앞으로 더 길고 촘촘하게 뻗어나갈 것이다.

장대익 동덕여대 교수·과학기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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