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싼샤 댐 90년, 수도 분할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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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3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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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양쯔 강의 싼샤 댐은 국부 쑨원이 1919년 처음 구상한 사업으로 구상 70년, 조사 50년, 측량 40년, 논쟁 30년을 거쳤다. 1932년 장제스 국민당 정권은 싼샤 댐 건설을 위한 기초작업을 시작했다. 1944년에는 54명의 중국 기술자가 미국에 건너가 댐 건설을 위한 기술교육을 받았지만 1947년 내전의 발발로 중단됐다. 1949년 공산당 집권 후 마오쩌둥도 댐 건설 계획을 추진했으나 경제적 곤경으로 진척이 늦어졌다. 1980년대에 계획이 다시 살아났다. 싼샤 댐 건설계획은 1992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승인을 받았다. 1994년 공사를 시작해 15년 만인 올해 전체 공사를 완료해 첫 구상부터 완공까지 90년이 걸렸다.

중국의 권력자들은 ‘나의 치적’으로 삼겠다는 무모한 발상을 하지 않았다. 중국 사람들은 이런 느려터짐의 문화로 만리장성을 쌓고 쯔진청(紫禁城)을 세우고 싼샤 댐을 축조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산업화 시대나 민주화 시대나 일단 저질러놓고 조급하게 밀어붙이는 국가경영에 익숙하다. 그런 ‘빨리빨리’가 대한민국의 고속성장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지만 백년대계를 심모원려(深謀遠慮) 없이 졸속으로 밀어붙이다 값비싼 비용을 치를 때가 왕왕 있다. 세종시 건설도 이 경우에 해당할 것이고, 4대강 정비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풍긴다.

노무현도 반대한 정부 공간분리

5년 임기의 대통령이 국민적 합의도 없이 615년 내려온 수도를 옮기려고 한 것부터 무모했다. 헌재 위헌 결정으로 수도이전이 중단됐지만 수도가 양쪽으로 나뉘게 됐다. 세종시 대못의 설계자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수도분할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7월 20일 세종시 기공식에서 “청와대와 정부, 정부부처의 일부가 공간적으로 분리되는 것은 업무 효율상으로 매우 불합리한 결과”라며 “청와대와 국회도 이곳으로 오는 것이 순리”라고 말했다.

그는 행정부처의 분리 이전에 대해 체험에서 우러나온 반대를 한 적도 있다.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부산 유지들이 해양부의 부산 이전을 건의하자 장관의 출장이 대부분 국회 정당 국무회의 청와대와 관련된 일이라며 해양부가 부산으로 옮기면 장관은 거의 서울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투표에 부쳐 수도 전체를 세종시로 옮기거나, 통과가 어렵다고 판단했으면 수도분할을 포기했어야 옳았다. 일부 부처만 먼저 옮길 테니 청와대 국회 사법부와 나머지 부처도 나중에 오라는 식은 무책임했다.

이명박 대통령(MB)이 이달 초 “세종시 문제에 관해 최선을 다했는데도 충청도민이 받아주지 않으면 도리가 없지 않느냐”고 한 말을 두고 퇴로(退路)를 열어둔 것이라는 해석이 일각에서 나왔다. 청와대 쪽 이야기를 들어보면 맥을 잘못 짚은 해석이다. MB는 최근 한 모임에서 “남은 임기에 큰일을 벌이기보다 모든 것을 제자리에 갖다놓는 데 주력하겠다. 잘못된 것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반드시 바로잡겠다는 굳은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 수정안의 국회 통과와 관련해 민주당 자유선진당과 친(親)박근혜 의원들이 반대하니 원안대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충청 표만 의식한 나머지 수도권 표심을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영호남과 충청도가 원적(原籍)인 수도권 주민도 몇십 년 사는 동안에 수도권 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화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신행정수도건설법은 세종시로 이전하지 않는 6개 부처만 명시한 네거티브 규제방식이다. 나머지 부처들의 이전계획은 행정안전부의 고시에 담겼다. 9부2처2청을 내려보내기로 한 고시만 바꾸면 세종시 수정안의 실천이 가능하다는 견해와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어찌됐든 한 부처도 내려보내지 않고서는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야당과 박근혜 전 대표를 설득하거나 충청민심을 달래기 어렵다.

교과부 쪼개 세종시 보내자

다소 비효율이 따르더라도 세종시에 꼭 옮겨야 할 부처가 있다. 바로 교육과학기술부다. 교육부와 과학기술부는 원래 하나로 합쳐서는 안 될 부처였다. 통합 2년이 다 돼 가는데도 교육과 과학 부서들이 물과 기름처럼 따로 돌고 있다. 이번 기회에 다시 둘로 나누어 과학기술부를 인근에 유관기관이 많은 세종시로 보내면 장관은 서울 오르내리느라고 바쁘겠지만 업무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

MB 정부는 본래 교육 자치와 대학의 자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교육부를 없애고 교육위원회를 설치하려고 했다. 교육부의 서기관이나 사무관 앞에서 대학 총장이 절절매는 나라에서 글로벌 대학이 배출되기 어렵다. 교육부의 업무를 지방 교육청과 대학에 떼 주고 위원회 정도로 격하해 세종시로 보내면 교육의 선진화를 저해하는 규제기관이 약화될 것이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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