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플레이를 합시다]제환정/약육강식이 당연하다고요?

  • 입력 2002년 10월 21일 18시 31분


주말 내내 오락을 하고 있는 일곱 살짜리 조카 녀석을 컴퓨터로부터 좀 떼내보려고 아파트 단지 앞 운동장으로 데리고 나섰다. 이모를 이겨보겠다고 씩씩거리는 조카의 페이스에 맞춰 어슬렁거리며 뛰고 있는데, 운동장 한 쪽에서 한참 축구 시합을 벌이던 꼬마 녀석들 무리에서 싸움이 일어났다.

올 6월 이후에는 동네 축구에도 역할 분담이 생긴 것인지, 스스로를 ‘히딩크’라 칭하던 키 큰 녀석이 저보다 훨씬 작은 녀석과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우리가 운동장 반 바퀴를 도는 동안 상황은 더 악화된 듯, 히딩크 어린이가 훨씬 몸집이 작은 어린이를 발로 차고 급기야 올라타는 상황에 이르렀다. 상황을 살피던 조카는 밑에 깔린 아이의 이름을 대며 자신의 친구임을 알렸다.

아무리 작은 아이들의 세계라 해도 완력만이 우선시되는 ‘불의’를 더 이상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필자는 다른 어른들을 대신해 사태수습에 나섰다. 물론 머릿속으로는 계산을 했다. 그런 ‘언페어’한 행동을 저지른 녀석의 키가 내 턱 밑에도 미치지 못했으므로.

그러나 한껏 용기를 냈던 필자의 ‘정의로움’은 뜻밖의 반격에 무너졌다. “지금 네가 하는 것처럼 이러이러한 행동을 하면 나중에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다”며 녀석을 꾸짖을 참이었는데, 녀석은 미래의 훌륭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당장의 분풀이가 더 시급했던지 자신의 억울함을 악으로 호소하며 내 눈앞에서 이단 옆차기를 시도했다.

두 꼬마의 말다툼에 젊은 여자가 등장하고 고성까지 가세하자 호기심에 찬 어른 구경꾼들이 늘어났다. 그런데 이 구경꾼들은 그저 흥미롭게 사태를 지켜보기만 할 뿐, 말 한마디 거들어주지 않는 게 아닌가. 결국 필자는 엉거주춤 물러서며 간신히 이렇게 얘기했다.

“야, 너 쟤 또 때리면 쟤네 엄마한테 이를 거야.”

말보다 손이 나가는 아이와, 소란에 겁먹은 나약한 이모와, 그것을 재미나게 구경하던 어른들의 모습에 풀이 죽어버린 조카를 보면서 필자는 새삼 ‘정의’와 ‘공정’을 떠드는 것과, 그것을 행하는 사소한 실천 사이의 간극을 체감했다. 나 자신, 한참이나 어린 꼬마에게 야단 한번 치는 것이 그리도 어려웠음에랴.

골목마다 펄럭이는 현수막에도, 시선마다 들어차는 활자 속에서도 ‘정의’와 ‘공정’의 팻말은 번쩍거리지만,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배웠음직한 기본적인 공정함을 실천에 옮기려는 의지는 아주 드물게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요즘 세상에는 흔히 ‘약자에 대한 보호’라는 말을 꺼내면서 ‘약육강식 논리’의 엄연한 현실논리를 들이대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험하다 해도, ‘불의를 보면 참는 것이 약자된 도리’라는 간교한 생각을 아이들에게까지 심어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이가 영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세상은 아니었으면 한다.

제환정 홍보대행사 ´커뮤니크´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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