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성태윤]추경 집행에 어떤 조건도 있을 수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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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2013년 미국은 연방정부 폐쇄로 곤혹을 치렀다. 핵심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개혁 내용이 포함된 2014년도 예산안 합의가 실패하면서 국가부채한도 증액이 이루어지지 않자, 예산을 배정하지 못해 연방정부 업무가 중단된 것이다. 연방정부 폐쇄의 근본 원인은 오바마 행정부의 건강보험 개혁에 대한 의회 내 갈등이었다. 즉, 국가부채나 예산안 자체 이슈가 아니라 핵심은 건강보험 개혁 반대였다.

물론 건강보험 개혁에 대해 찬반 모두 가능하다. 또한 당시 미국 예산안이 적절했는지 이견도 가능하다. 그러나 건강보험 개혁 반대를 국가부채한도 증액 건에 연계해 예산 집행이 불가능해지며 연방정부가 폐쇄되자, 그 갈등은 양당 모두의 지지율을 추락시켰다. 특히 이를 주도한 공화당의 지지율 하락은 심각했다.

우리도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을 두고 정치적인 갈등이 있다. 현재 심각한 경기침체가 지속됨에 따라 추경을 통한 경기하락 저지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추경이라곤 하지만 경기하락의 속도와 강도로 볼 때 편성 규모가 충분하지도 않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피해에 노출된 계층을 지원하기에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올해 상반기에는 경기침체 속에서 세금 징수를 늘려놓아 이렇게 부족한 추경이나마 집행하지 않으면 경기는 계속 하강하게 된다. 따라서 추경 자체는 반드시 필요하다.

1997년부터 2006년까지는 매해 추경이 있었고 그 이후에도 상황에 따라 추경이 계속 편성됐는데, 그때마다 정치적 갈등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정책당국 입장에서는 편성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피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규모 추경이 있었던 외환위기 직후 1998년과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을 보면 경기하락 상황에서 추경이 어려운 경제여건을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역시 사실이다.

지금의 실물경기 악화도 외환위기 직후 또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계상황에 내몰린 가계와 기업의 여건은 그때만큼 심각하다. 그럼에도 추경 집행에 갈등이 있는 이유는 추경에 조선·해운업 등 구조조정 관련 금액이 편성돼 있기 때문이다. 추경에 구조조정 관련 예산이 있어서, 구조조정 관련 정책 결정자에 대한 청문회 소환을 집행 조건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조조정의 책임 규명과 방향 설정에 대한 논의는 어떤 것의 사전 조건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심도 있게 진행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그와 별도로 추경은 시의적절하게 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13년 미국 연방정부 폐쇄 관련 협상에서 당시 야당인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은 민주당 행정부의 건강보험 개혁은 반대했지만 여기에 따른 예산은 타협안에 포함했다. 그래서 그는 연방정부 폐쇄를 주도한 공화당 내 강경그룹 ‘티파티(Tea Party)’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이것이 수용되지 않으면 다른 것도 인정할 수 없다”는 강경한 극단주의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정책은 사안 자체로 필요 여부를 평가하고 집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추경이 필요해 편성했다면 그 자체로 집행돼야 한다. 구조조정 청문회 역시 필요하다면 다른 사안과 연계될 것 없이 그 자체로 개최하고 구체적인 사안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추경 같은 지출정책은 어느 시점에 집행하느냐에 따라 영향과 효과가 전혀 다를 수 있다. 지금 우리 경제는 추경이 필요한지, 구조조정이 얼마나 긴박한지 재론할 필요 없이 가라앉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추가경정예산#경기침체#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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