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석환]동북아 지형 변화의 속내, 에너지 안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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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환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김석환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13일 끝난 한-러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극동시베리아 개발과 관련된 ‘남-북-러 3각 협력’의 밑그림과 한-러 양국의 에너지 및 북극항로 개발 협력 방안 등을 내놨다. 이번 합의는 최근 동북아 국가들이 직면한 거대한 변화에 대한 한-러 대응 전략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동북아에는 장기간에 걸쳐 지역 정세와 국가의 경쟁력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물류혁명과 에너지 안보 경쟁, 그로 인한 지역 패권의 변화 등이 서로 맞물려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러시아 쪽 북극 루트의 상설화 가능성은 러시아 에너지의 동북아 시장 진출 및 수출 대국인 한중일의 물류에 혁명적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에너지 안보 구도의 변화는 수급 변화뿐 아니라 군사 전략의 변화도 촉발하고 있다. 미국이 셰일가스 생산 증대에 따라 중동산 가스 수입을 줄이면서 에너지 수송 루트 중심으로 짜인 해상 전략을 수정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극 루트 상설화가 가시화되고 중국 군함들이 한국의 동해안, 일본의 쓰가루 해협까지 출현하고 있다. 미일 입장에서는 현실화된 중국 해군의 도전을 억제해야 하기 때문에 해상 방어선을 점점 아시아의 동북부 방향, 즉 한반도 및 일본 열도 북쪽으로 확대 이동하는 것이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미국과 호주 등의 용인과 동조는 이러한 상황과도 연동돼 있다. 마침 중국은 최근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를 통해 ‘국가안전위원회(NSC)’를 창설했다.

북극 루트 가시화로 인한 러시아(극동 및 사할린)와 동북아 국가들 간 에너지 통합 가능성 및 미국에서 시작된 셰일가스 혁명 후폭풍이 중국의 부상으로 촉발된 지역 패권 변화와 맞물리면서 동시다발적으로 동북아 국가들에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대응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미국과 안보 외교 장관 간 전략협의체인 ‘2+2’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받은 데 이어 러시아와도 ‘2+2’ 전략협의체를 발족시켜 에너지 안보 및 지역 정세에서의 협력을 강화하는 등 전략적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와 전 방위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고, 인도도 사할린 투자에 이어 최근에는 한·중·일·싱가포르와 함께 북극 이사회의 옵서버 국가가 됐다. 극동 액화천연가스(LNG)에 대한 일본의 투자, 싱가포르와 인도의 극동 러시아에 대한 관심의 증대 등은 모두 이러한 경쟁의 또 다른 예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에너지의 출현과 공급 환경의 변화는 정치와 선순환적으로 결합할 때만 그 나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새로운 에너지원인 석탄이 출현했을 때 이를 산업적으로 가장 먼저 활용한 영국은 프랑스와 독일을 압도해 산업혁명의 승자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소련(러시아)으로부터 가스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면서 경쟁력을 강화했다. 외교안보정책이 산업정책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필요한 시점에 결정적 정책과 기술이 선순환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한중일은 현재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경쟁을 하고 있다.

현재 동북아에 19세기 힘을 내세운 ‘함포 외교’ 분위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21세기의 동북아는 당시의 제국주의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지역 협력과 기술(에너지) 그리고 정치의 선순환적 결합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더 강하다. 동북아의 미래는 한중일 3국 정부의 능력에 달려 있다. 그리고 한중일 삼국지의 미래는 결국 3국 정부의 능력과 질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김석환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러시아#에너지#북극 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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