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재연]신용카드 제한하되 체크-직불카드는 늘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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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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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금융감독 당국이 최근 ‘신용카드 발급 및 이용한도 합리화 대책’을 발표함에 따라 앞으로 신용등급이 7등급 이하인 저신용자들은 가처분소득이 월 50만 원에 미치지 못할 경우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없게 된다. 또한 연체 등으로 결제능력이 없다고 인정되는 고위험자와 카드 3장 이상으로 카드대출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카드 발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에 따라 신용카드를 발급받지 못하게 되는 저신용자 등 일부 소비자의 불편과 불만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올해 3월 말 기준 경제활동인구 1인당 4.7장의 신용카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민간소비지출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한 지출 비중이 63.3%를 차지할 정도로 신용카드 사용이 일반화돼 있다. 지갑에 현금 없이 신용카드 1장만 넣고 다니더라도 버스, 택시를 타고 이동하거나 음식을 사먹거나 필요한 물건을 사는 데 큰 지장이 없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다음 월급날까지 남아 있는 돈이 없더라도 길게는 한 달 정도까지는 신용카드로 생존할 수 있다. 또한 극장에서 영화를 보거나 피자가게에서 피자를 시켜 먹거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에도 바가지(?)를 쓰지 않고 제값을 지불할 수 있는 혜택까지도 누릴 수 있다. 전화요금, 아파트관리비 등을 신용카드로 결제하도록 해 놓으면 할인을 받으면서도 매달 요금납부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당장 현금이 없어도 최소 한 달 동안은 연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과 같은 신용카드 만능 국가에서 금융감독 당국이 신용카드 발급과 이용을 제한하는 강력한 조치를 내린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가계부채가 900조 원을 넘어서고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환능력이 없는 카드 사용자들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신용카드대금 미납으로 인한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양산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당장 현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는 신용카드는 양면성이 있어서 상환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편리한 지급수단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약탈적 신용공여(대출)’가 될 수 있다. 이에 더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신용카드의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이 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무담보신용대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상황이 악화되어 소득이 감소할 경우 카드대금 상환불능의 위험성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 감독당국의 인식은 진일보한 것으로 판단된다. 과거에는 정부 일각에서도 신용카드를 한 달간 무이자 자금을 이용할 수 있는 서민금융의 일환으로 생각하고 신용카드 발급 확대를 요구했다.

따라서 신용카드 발급 대상을 엄격히 제한할 필요는 충분히 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신용카드를 발급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편이나 불만을 고려해 이들도 신용카드의 신용공여를 제외한 여타 혜택은 충분히 누릴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우선 많은 현금을 지니지 않아도 되게끔 자신의 예금계좌에서 즉시 카드결제대금이 인출되는 체크카드와 직불카드를 불편 없이 발급받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또한 현금이나 체크카드 등을 사용해 물건값을 지불할 경우에도 바가지를 썼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신용카드가 제공하는 과도한 혜택을 손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병원비 등 급전이 필요할 경우 자신과의 오랜 거래관계를 바탕으로 부담이 가능한 금리로 빌릴 수 있는 제대로 된 서민금융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아무쪼록 이번 감독당국의 조치가 합리적 소비를 정착시키고 나아가 제대로 된 서민금융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신용카드#체크카드#직불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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