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이기우/자살방조 시대

  • 입력 2003년 10월 13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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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우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2002년 사망원인 통계’는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우리 사회의 중심축인 20∼40대를 죽음으로 이끈 주된 사인(死因)이 자살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또 사상 처음 자살사망률이 교통사고사망률을 앞질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사망률도 전년 10위에서 4위로 올랐다. ‘스스로 목숨 끊고 사회가 이를 방치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1990년 이래 장기불황에 시달리는 일본도 지난해 3만2000여명이 자살했다. 이 중 ‘건강문제’로 인한 경우가 46.1%, 부채 및 생활고 등 ‘경제·생활문제’의 경우가 24.7%였다. 특히 경제문제로 인한 자살자는 전년 대비 16% 늘어 처음으로 7000명을 넘어섰다.

우리의 경우도 생활고로 인한 자살이 결코 줄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소식이다. 설상가상으로 올해는 수출과 국내경기 모두 좋지 않고 지난 정부의 부동산 드라이브정책과 카드정책의 여파가 서민들을 압박하는 형국이다.

필자는 십수년간 서울의 달동네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생활하며 빈곤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지 않기 위한 공동체운동을 해 왔다. 그러나 이젠 개개인이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는 느낌이 강하다. 근본적인 대안 마련에 우리 사회가 힘을 모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다.

가령 전문가들은 대안으로 사회비용의 축소를 제안한다. 서민임대주택의 확대 보급과 공교육 내실화 등이 그것이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비 중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전월세 가격을 줄여줄 획기적인 방도를 찾고 국민임대주택을 신빈곤층에도 공급해야 한다.

우리 역사상 자살을 방조하는 시대가 있었는가. 가난한 사람은 자살을 하고, 조금이라도 힘 있는 사람은 우리 사회를 떠나려는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 우리 핏속에는 어려울 때 서로 돕는 환난상휼과 상부상조의 정신이 흐르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수많은 국난을 극복한 사람들은 바로 민초였으며 역사의 진보란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 그들이 어렵다. 정치권과 사회지도층은 ‘살기를 포기하려는 사람들’의 아픔을 돌보고 위로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기우 신부·천주교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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