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윤영철]주장만 앞세운 PD저널리즘의 비극

  • 입력 2005년 12월 8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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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MBC)이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MBC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하며 이 방송사가 제작한 ‘PD수첩’을 규탄하는 수위가 날로 높아만 간다.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팀의 ‘연구윤리’를 문제 삼았던 PD수첩 취재팀이 ‘취재윤리’를 현저하게 위반한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방송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MBC는 곧바로 사과성명을 발표했지만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이미 여러 차례의 잘못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사과해 온 전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사과만으로 시청자들의 불만과 실망을 잠재우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비리와 불의를 고발하여 사회정의를 구현하고자 했던 PD수첩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일차적인 책임은 전문인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인 윤리의식을 충분히 습득하지 못한 취재팀에 있다고 하겠다. 취재과정에서 윤리성을 상실하면 취재 결과의 타당성까지 잃는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또 PD수첩팀이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사이언스’지를 상대로 진위 논란을 벌이고자 했다면 ‘사이언스’지가 인정할 만한 전문성을 지닌 기관의 검증을 받았어야 했을 것이다. 제보만을 믿고서 좌충우돌할 사안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는 프로듀서(PD)들이 어떤 악의를 가지고 ‘황우석 죽이기’를 기획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PD들은 진실 규명이라는 저널리즘 사명에 나름대로 충실하고자 했을 것이라 믿고 싶다. 그런데 왜 기자들이 만든 방송 뉴스는 편파성 시비가 많지 않은 반면 PD가 만든 시사 프로그램은 자주 시비에 휘말리는 것일까. 두 집단의 제작규범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자저널리즘은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 대립하는 견해를 균형 있게 싣되 독자가 최종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하지만, PD저널리즘은 사회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주장을 담아 전달하려는 속성을 지녀 왔다. 상반된 주장에 대해 제작자가 도덕적 판단을 내려 ‘정의’의 관점에서 ‘사악한 쪽’을 비판하고 고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 정당성에 기초한 ‘사회적 진실’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기획단계에서 선악 판단에 대한 결론을 내려놓고 이후에는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취재를 진행하는 일이 잦아진다. 결론에 맞는 인터뷰만 따야 할 상황이 아니었다면 협박, 함정, 위장, 그리고 몰래카메라 등 온갖 비윤리적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사회 고발 프로그램은 기획단계에서 도덕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엄중한 책임이 뒤따른다. 제작자는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리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 사실 관련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난자 공여에 관한 의혹만 하더라도 인터뷰 기술을 발휘하여 난자 공여자의 진술을 얻어 냄으로써 비교적 손쉽게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배아줄기세포 진위 는 엄밀한 절차와 기준에 따라 ‘과학적 진실’을 입증하는 게임이었다. 주장만을 앞세운 반면 증명을 게을리 했던 PD들이 하루아침에 ‘과학적 진실’을 규명하는 최종 심판자로 자처하고 나섰으니 과학자들이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지만 인간의 판단이 항상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자기 성찰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며 정반대의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동료나 선배 방송인의 충고와 조언을 간섭이나 통제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PD저널리즘 프로그램의 자체 검증 시스템을 복원하는 일이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PD들이 ‘내 판단은 항상 옳다’는 오만과 착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윤영철 연세대 교수 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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