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리포트]지방의원 입열면 청탁 손벌리면 이권

  • 입력 2001년 4월 23일 18시 46분


《91년 지방의회가 도입된 이후 지방의원들은 주민 의견수렴과 단체장 견제 등 긍정적인 역할을 많이 수행해 왔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권개입과 인사청탁, 단체장과의 소모적인 힘겨루기 등으로 지역사회에서 비난의 대상이 돼 왔다. 지방의원들의 각종 비리와 단체장과의 알력 등 파행적인 모습과 문제점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인사청탁〓대전시 산하의 한 공사는 얼마전 직원 10여명을 신규채용하면서 상당수 시의원들에게서 채용청탁을 받았다. 공사측은 자체 기준에 따라 선발하려고 처음에는 청탁을 거부했다. 그러자 일부 시의원들이 공사 관계자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앞으로 두고보자”는 등의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공사측은 시의원들이 부탁한 사람을 일부 채용하는 선에서 타협했다.

광주시의 한 구청은 올해 2월 K동장을 다른 동(洞)으로 전보발령했다가 2시간여 만에 취소했다. 표면적 이유는 일부 통장과 주민들이 “K동장이 운영해온 주민자치 프로그램을 지속해야 한다”며 유임을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돼있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구의원들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전북의 한 도의원은 과거 공무원 인사 때 학교동문 친척 등 20여명의 인사청탁에 나서 이 가운데 5, 6명을 승진 또는 희망보직에 이동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인사철만 되면 ‘실력 있는’ 지방의원에게 줄을 대려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다.

전북도의 간부 P씨는 “지방의원들이 인사철에 5, 6건의 청탁을 하는 것은 예사”라고 말했다.

▽각종 비리혐의〓부산시의회 도시항만위원인 P의원은 99년 7월 기장군 철마면 S공원묘원 확장을 위한 도시계획시설변경결정 신청안이 통과되게 해주는 대가로 업체에서 4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최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뇌물수수 이외에도 자신과 관련된 기업이 이권을 따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의원도 적지 않다.

부산시 의원을 지낸 A씨가 사실상의 대표로 있는 한 건설업체는 그의 재임기간(91년4월∼98년6월)중 부산에서 30여건의 공사를 수주했다. 이 회사는 A씨가 지방의원이 되기 전에는 20여년간 10여건의 공사를 따냈다. 이 때문에 이 회사는 지난해 사정당국의 내사를 받기도 했다.

제주시 의원과 가족 등이 대주주인 한 기업체도 98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행정기관의 수의계약 공사 10건을 따내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아파트 건축 등 각종 인허가나 지원금 배분, 물품구입과정 등에 개입해 리베이트를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경기지역 기초단체의 한 공무원은 “벤처자금과 각종 농어업자금 지원이나 사회단체 지원금 배분, 컴퓨터 등 각종 물품 구입시 의원들이 자신과 관련된 업체나 개인에게 무조건 자금을 지원하거나 물품을 구입하라고 압력을 넣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원들은 청탁을 들어 주지 않으면 “다음 질의 때 보자. 수뢰 사실이나 인사비리를 알고 있다”는 등 협박을 일삼고 있다는 것. 경남도의회는 지난해 ‘의원 윤리강령’을 만들기로 했으나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제정을 미루고 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김성호(金聖鎬)수석연구원은 “지방의원들에게도 보수를 지급하고 그 대신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며 “지자체의 인사위원회를 공정하게 운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면 의원의 비리와 인사청탁을 막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기대기자·부산·전주〓조용휘·김광오기자>k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