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테러 방지시설에 美 ‘예산 테러’ 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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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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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사태 이후 미국 지방정부들이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아 마련한 각종 테러방지 시설이 무용지물로 전락하면서 예산낭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9·11테러이후 지방정부들이 대테러전쟁 명목으로 구축한 통신네트워크, 응급의료시설, 감시카메라, 방화벽 등이 정작 테러분자 색출과 테러 방지 목적으로 사용된 적은 거의 없다고 28일 보도했다. 로스앤젤레스 글렌데일 경찰은 중앙정부 지원으로 20만5000달러짜리 최첨단 전투 기능을 갖춘 베어캣 장갑차(사진)를 마련했다. 인근 디즈니, 드림웍스 영화 스튜디오에 대한 테러분자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장갑차가 출동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네브래스카 체리 카운티는 쇠고삐를 전자화하고 정기적인 여물 검사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대대적인 농장 현대화 작업을 벌였다. 테러분자들이 동물을 이용한 생화학전을 벌일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중앙정부에서 수천 달러를 지원받아 추진한 사업이었지만 주민 6000명이 사는 이 작은 마을에 과연 필요한 조치였는지는 의문이다.

뉴욕 시는 2008년 테러분자들이 공중보건 기록을 이용해 생화학전을 벌이고 있다는 판단 아래 보건기록을 전자화하는 사업을 벌였다. 중앙정부에서 300만 달러를 지원받아 추진한 초대형 사업이었지만 정작 기록을 이용하는 의료진조차 테러방지 목적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스캐롤라이나 애슈빌에 있는 군인병원은 75만 달러를 들여 2.5m 높이의 강철 특수벽을 구축했다.

이 신문은 테러방지시설이 무용지물이 된 것은 중앙정부가 정확한 용도 분석 없이 마구잡이로 예산을 퍼주고 지방정부들도 경쟁적으로 예산 따내기에 매달리며 과시용 프로젝트를 남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 정부에서 테러방지 예산을 관리하는 부처는 국토안전부로 2002년 부처가 생긴 후로 지금까지 9년 동안 320억 달러를 지방정부의 테러방지 사업에 지원해줬다. 연방정부가 산더미 같은 재정적자를 안고 있지만 국토안전부의 예산 배정에 문제를 제기하는 의원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테러방지라는 ‘신성한’ 목적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득이 될 것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것이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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