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요커]“속터져도 法때문에…”

  • 입력 2006년 9월 2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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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맨해튼은 전 세계에서 임차료가 가장 비싼 도시. 방 1개짜리 아파트 월세가 지역에 따라 3000달러(약 285만 원)를 넘는 곳도 수두룩하다.

이처럼 금싸라기 같은 맨해튼 지역에서 100평 규모의 아파트를 25년 동안 공짜로 사용해 온 60대 할머니가 있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것도 합법적으로.

맨해튼 24번가에 자리 잡은 뉴욕한인회관 5층에는 아파트로 쓰고 있는 100평 규모의 공간이 있다.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A 씨는 1982년 이후 한번도 세를 내 본 적이 없다. 맨해튼에서 이 정도 아파트라면 월세가 보통 7000달러를 넘는다.

뉴욕한인회관이 세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A 씨가 처음 이 건물에 둥지를 튼 것은 1982년. 1983년 이 건물을 사들인 뉴욕한인회는 5층 용도를 상업용에서 주거용으로 바꾸면 A 씨로부터 세를 받을 수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뉴욕 시가 정한 여러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5층이 계속 상업용으로 남아 있으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주거용이 아닌 만큼 A 씨와 월세 계약을 할 수도, 세를 받을 수도 없게 된 것.

뉴욕한인회는 몇 차례나 세를 받기 위해 소송을 벌였지만 “건물용도가 주거용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세를 받을 수 없다”는 판결만 이어졌다. 더구나 뉴욕에서는 세입자를 합법적으로 쫓아내기가 매우 어렵게 돼 있다.

건물주인 뉴욕한인회가 더욱 억울한 것은 난방비와 수도사용료도 대신 내주고 있다는 점. 이경로 뉴욕한인회장은 “A 씨는 공짜로 25년간 살면서도 겨울철 난방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으면 반드시 항의했고, 배관이 새면 바로 뉴욕 시 환경국에 신고하기도 했다”며 “‘정서’보다는 ‘법’이 앞서는 뉴욕이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라고 말했다.

뉴욕한인회는 몇 년 전 A 씨에게 “자발적으로 나가 주면 10만 달러를 주겠다”고까지 제시했지만 이 또한 거부당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실마리가 풀렸다. 뉴욕 시로부터 20만 달러를 들여 5층을 완전히 고치면 주거용으로 허가를 내주겠다는 통보를 받고 전면 개보수를 하기로 한 것.

그런데 뉴욕 시 규정상 처음 월세는 800달러부터 시작해야 한다. 또 뉴욕은 월세가 2000달러 미만인 아파트는 매년 인상할 수 있는 상한선을 적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아파트에서 시장가격으로 제대로 된 세를 받으려면 앞으로도 몇십 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뉴욕한인회는 밝혔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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