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그들에게 제주는 ‘三茶島’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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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차 문화 1번지로” 故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전회장의 집념
“2등 차는 없다” 아들 서경배 회장, 엄격한 품질관리로 1등 차 생산
“한중일 3국 으뜸 브랜드로” 일로향-삼다연 등 차별화된 제품 개발

제주 서귀포시 서광다원에선 첫 수확을 기다리는 찻잎이 한창 올라오고 있다. 22일 오전 서광다원 곳곳에선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서귀포=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제주 서귀포시 서광다원에선 첫 수확을 기다리는 찻잎이 한창 올라오고 있다. 22일 오전 서광다원 곳곳에선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서귀포=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22일 오전 11시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다원. 아모레퍼시픽 장원 설록차연구소의 이민석 수석연구원(39)이 나흘 뒤 첫 수확을 할 찻잎을 뜯어 보였다. 진한 녹색 찻잎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연두색 어린잎이었다. 봄에 찻잎이 5장 정도로 자라면 그중 3장 정도를 차례로 딴다. 제주 지역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찻잎을 수확하는 곳이다.

서광다원은 30여 년 전만 해도 제주 3대 오지 중 하나였다. 제주 사람들은 이곳을 ‘머들(돌무지)’이라고 불렀다. 1983년 본격적으로 개간이 시작될 때만 해도 비포장도로로 3시간 넘게 걸어서 들어와야 했던 곳이다. 전기는커녕 식수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같은 제주 지역의 도순다원과 한남다원도 비슷했다.

이곳을 330만5000m²(약 100만 평)가 넘는 녹차 밭으로 바꾼 것은 고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전 회장과 아들인 서경배 회장의 집념이었다. 서 전 회장은 1979년 본격적으로 녹차 사업을 시작한 뒤 제주 지역에 꾸준히 투자했다. 아들인 서 회장은 수확기가 되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을 찾으며 관심을 쏟았다. 부자의 노력은 한국 녹차 문화의 재개를 알리는 원동력이 됐다.

22일 서광다원에서 이민석 수석연구원이 찻잎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왼쪽). 아모레퍼시픽이 지난달 제주 서귀포시에 문을 연 ‘오설록 티스톤’에선 전문 큐레이터가 차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귀포=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22일 서광다원에서 이민석 수석연구원이 찻잎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왼쪽). 아모레퍼시픽이 지난달 제주 서귀포시에 문을 연 ‘오설록 티스톤’에선 전문 큐레이터가 차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귀포=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 100여 번의 현장조사

서 전 회장이 녹차 사업에 뛰어든 것은 사업성이 아니라 일종의 신념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서 전 회장은 녹차 사업에 대한 의지를 밝히면서 “우리보다 훨씬 더 큰 대기업들이 앞장서야 하는데 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에 손을 대지 않는다”며 “우리가 나서 한국의 녹차 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10년은 지나야 생산성이 보장되는 산업에 함부로 뛰어들면 안 된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하지만 서 전 회장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100여 번에 걸친 현장조사가 이뤄졌다. 연평균 14도 이상의 기온, 많은 일조량, 1600mm 이상의 연강수량을 보이는 후보지 가운데 제주 지역이 최종 낙점됐다. 물이 잘 고이지 않는 지질 덕분에 차 생산에 적합하다는 게 결정적이었다.

서광다원에서 생산한 제품들은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 대표적인 제품이 ‘일로향(一爐香)’이다. ‘일로향’은 그해 가장 먼저 수확한 찻잎으로 만드는 프리미엄 제품으로 한 해 1000통(1통에 60g) 정도만 생산된다. ‘북미 차 챔피언십’ 덖음차 부문에서 “한국에 이런 뛰어난 차가 있었느냐”는 반응을 얻으며 세 번(2009, 2011, 2012년)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일로향’이 이렇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과 연구 덕분이다. 장원 설록차연구소에서는 매년 4, 7, 10월 정기 수확시기가 되면 매번 1200∼1600여 점의 찻잎 샘플을 채취해 품질 검사를 진행한다. ‘일로향’은 여기에서 가장 우수한 것만 엄선해 만든다. 또 채엽(採葉·잎을 따는 일)부터 시작해 잎을 말리고, 덖은 뒤 건조하는 등 7개 과정을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세심한 품질 관리가 이뤄진다. 박현민 아모레퍼시픽 오설록 브랜드매니저는 “대규모 녹차 밭에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한 표준화 작업을 진행해왔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일로향은 아직은 손해”라고 말했다. 아버지인 서 전 회장 시절부터 손익을 따지지 않고 제품 개발과 품질 향상에만 몰두해왔기 때문이다. 최고 품질의 찻잎만 사용한 탓에 제품 가격이 15만∼16만 원에 이르고, 매번 한정된 수량만 생산돼 제품을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인기 있지만 워낙 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아직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 ‘오설록 티스톤’ 우리 차 체험공간

“차(茶)라는 단어를 뜯어보면 ‘사람과 가장 가까운 나무와 풀’이라는 뜻입니다. 건강에 좋아 ‘차수(茶壽·108세)’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 차 체험공간인 ‘오설록 티스톤’의 이진주 큐레이터(27·여)가 말했다. ‘오설록 티스톤’은 지난달 ‘티 뮤지엄’ 바로 옆에 문을 열었다. 아모레퍼시픽은 서광다원과 함께 이 일대를 한국 차 문화의 1번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차 테마파크’ 수준으로 키우고 있었다.

우리나라 차 문화를 중국이나 일본의 차 문화와 차별화하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제품이 2010년 내놓은 우리나라 최초의 후발효차인 ‘오설록 삼다연(三多然)’이다. 발효를 위해 된장 등 장류를 발효하는 데 쓰이는 1000여 가지 발효균을 연구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후발효차인 중국의 보이차와는 다른 한국적 특징을 살리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한라봉 껍질 같은 제주도의 여러 특산품을 넣은 ‘블렌딩 티’ 시리즈도 내놨다.

기술 연구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제주 현지의 장원 설록차연구소와 경기 용인시의 미지움을 통해 고품질을 유지하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기존 세계 녹차업계가 품질 유지를 위해 소규모 생산만 해왔던 것에 비하면 파격적인 시도다. 차의 본고장으로 꼽히는 일본의 농가나 정부 관계자들도 대량 생산 기법을 배우기 위해 제주를 찾을 정도다.

서귀포=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바로잡습니다]

‘그들에게 제주는 三茶島’ 기사에서 아모레퍼시픽 전 회장의 이름은 서정환이 아니라 서성환이기에 바로잡습니다.
#제주도#아모레퍼시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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