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게 이렇군요]小與 유혹하는 '數의 정치'

  • 입력 2000년 12월 21일 18시 45분


《요즘 정치권에서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약속한 ‘국민이 바라는 국정개혁’이 윤곽을 채 드러내기도 전에 정계개편론까지 돌출해 정국의 시계(視界)를 더 흐리게 하고 있다.

사실 여소야대 정국 하에서는 수시로 정계개편론이 돌출과 잠복을 거듭하기 마련이다.

집권당이 국정을 수행하면서 소수당의 한계를 절감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90년 민정 민주 공화 3당의 합당이 대표적 사례다.

문제는 실현가능성 여부다. 작금의 상황도 소수당인 집권 민주당의 정계개편에 대한 ‘수요’만 감지될 뿐 한나라당이나 자민련 등 ‘공급 사이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자민련 유인책〓현재 거론되고 있는 정계개편론 중 그래도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되는 게 자민련과의 합당 또는 합당에 준하는 공조회복이다.

이른바 ‘140대 133’의 수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자민련 의원 17명이 모두 합당에 동참할 때 여당은 140석이 된다.

이와 관련, 한광옥(韓光玉)대통령비서실장이 이달 초 청구동으로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를 예방, 합당문제를 논의했다는 얘기까지 나돌았지만 양쪽 다 이를 부인했다.

실현가능성이 가장 있어 보이는 시나리오는 내년 초 당정쇄신 과정에서 JP에게 총리를 다시 맡아달라고 ‘호소’한 뒤 자민련 내부를 단속해 합당으로 가는 것.

물론 합당 후에는 JP에게 총재자리까지 넘겨줘야 여소야대를 타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김대통령이 당적 이탈에 버금가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데 과연 가능할지가 의문이다. JP도 최근 합당을 권하는 측근들에게 “그 양반이 욕심이 많아서…”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는 후문이다.

▽자민련의 선택〓자민련 김종호(金宗鎬)총재대행은 이날 이한동(李漢東)총리와 긴급 회동, 다시 불거지고 있는 합당론 대처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행은 자민련을 타깃으로 한 정계개편론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제발 이젠 쓸데없는 소설 좀 그만 쓰라”며 “지금은 무슨 다른 얘길 논의할 수 있는 조건도 못되고, 우리 당 내부에도 합당에 찬성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무성의’와 한나라당의 결사반대로 당장 교섭단체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데 무슨 정계개편이냐는 말이었다. 민주당 내에서도 “합당이 되더라도 과연 자민련 의원 17명이 모두 올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많다.

그러나 자민련 사정에 밝은 정치권의 한 중진은 “가장 강성인 강창희(姜昌熙)의원 한 사람 정도 이탈할지 몰라도 JP만 결단하면 모두 따라올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회창(李會昌)총재가 DJP분리라는 대권전략 차원에서 교섭단체안을 결사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차라리 합당이 낫다는 것이다.

▽정계개편의 촉매제〓또 다른 촉매요인으로 한나라당 내에서도 제기되고 있는 ‘대통령 중임제 개헌론’을 들 수 있다. 김덕룡(金德龍)의원과 박근혜(朴槿惠)부총재 등 한나라당 내 비주류 대부분이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해 내년쯤 개헌론을 매개로 한 정계개편 움직임이 가시화되지 않을까 하는 관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일단 개헌론만 부상하면 중임제든, 정부통령제든, 아니면 내각제든, 어떤 형식으로든 정계개편의 고리를 만들 수 있다는 일종의 ‘게임논리’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개혁세력 대연합’이라는 명분을 결합하면 김덕룡의원과 이부영(李富榮)부총재 등 한나라당 내 개혁세력은 물론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까지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게 여권 내 개헌론자들의 희망 섞인 전망이다.

최근 김대통령에 대한 YS의 태도에 전과는 다른 기류가 감지된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개헌에 완강히 반대하고 있는 한나라당 이총재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김정일 서울방문과 정계개편〓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내년 상반기 서울을 방문, 남북관계의 근본적 전환을 이룰 수 있는 보따리를 풀어놓을 경우 이를 계기로 보수세력과 개혁세력간의 이념적 갈등이 재현되면서 ‘보혁(保革) 구도’의 정계개편론을 유발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아직은 극히 불투명한 가설에 불과하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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