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th&Beauty]속설에 울고, 검은 상혼에 속고… 탈모, 이젠 ‘치료’하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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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탈모를 겪고 있는 한 회사원이 인터넷으로 탈모 방지 효과를 표방한 제품을 검색하고 있다. 피부과 전문의들은 탈모증 환자 대다수가 병원을 찾기 전 샴푸 사용이나 식이요법으로 ‘자가 치료’를 시도하지만 효과는 보지 못하고 오히려 적절한 치료 시기만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대한모발학회 제공
초기 탈모를 겪고 있는 한 회사원이 인터넷으로 탈모 방지 효과를 표방한 제품을 검색하고 있다. 피부과 전문의들은 탈모증 환자 대다수가 병원을 찾기 전 샴푸 사용이나 식이요법으로 ‘자가 치료’를 시도하지만 효과는 보지 못하고 오히려 적절한 치료 시기만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대한모발학회 제공
서른을 넘긴 나이,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면 종일 상사의 잔소리가 쏟아진다. 록밴드 활동 시절 굳은살이 떠나지 않았던 손가락은 말랑말랑해진 지 오래다. 여자친구의 이별 통보처럼 느닷없이, 아니 실은 애써 부정해온 사이 서서히 찾아온 탈모.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그녀처럼 머리카락이 빠져나간다. “자라나라 머리! 머리!” 웹툰 ‘청춘극장’의 주인공이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외친 말이다.

“탈모, 진단은 친구가, 치료는 샴푸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탈모증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20만7904명으로 2010년(18만928명)보다 14.9% 늘었다. 학계는 상태가 심각하지 않거나 치료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등의 이유로 병원을 찾지 않는 전체 탈모인이 실제 진료인원의 50배인 1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대한모발학회에 따르면 탈모 환자가 병원을 찾는 것은 증상이 시작된 지 평균 7.3년이 지난 때라고 한다. 그동안 탈모인은 남몰래 다양한 노력을 한다. 인터넷 탈모 커뮤니티에서 추천받은 샴푸를 쓰고, 미용실에서 두피 자극 마사지를 받고, 아침에 우유 대신 검은콩 두유를 마시고…. 이렇게 ‘자가 치료’를 시도하는 횟수는 평균 4.2회다. 미국(3.4회), 일본(3.1회), 스페인(2.6회), 독일(2.3회), 프랑스(2.1회)에 비해 훨씬 잦다. 2014년 기준으로 4조 원 규모로 추산된 국내 탈모 관리 제품·서비스 시장에서 효과가 검증된 전문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758억 원(1.9%)에 불과하다.

학회가 강동경희대병원과 가톨릭대 성바오로병원을 방문한 10∼70세 남녀 1021명을 상대로 ‘탈모증에 대한 인식 및 행동 패턴’을 설문한 결과 10명 중 5명은 자신이 탈모인지 확인할 때 전문의보다는 가족과 친구 등 지인에게 의견을 물었다고 답했다.

탈모를 치료하기 위해 샴푸와 토닉 등 화장품과 의약외품을 사용한다는 응답은 46%로 가장 많았지만 그중 효과를 본 것 같다는 응답자는 10명 중 1명도 되지 않았다. 특정 음식 등을 통한 치료에 대한 만족도도 2%에 그쳤다.

쓰린 속 뒤집는 잘못된 탈모 상식

탈모인이 제때 병·의원을 찾지 않는 이유는 탈모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탈모를 질환이 아닌 미용의 관점에서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탈모증은 남성형, 원형, 여성형 등 유형과 단계가 다양해 그에 따라 치료법도 달라진다. 하지만 탈모증에 여러 유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응답자는 39%에 불과했다.

세간에 난무하는 온갖 속설도 탈모 치료를 늦추는 원인 중 하나다. 회사원 문모 씨(38)는 최근 대한모발학회가 공개한 ‘잘못 알려진 모발 정보’를 읽다가 속이 뒤집혔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나의 생활을 지배해왔던 습관이 근거 없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예컨대 문 씨는 “가발이나 모자를 쓰면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머리가 빨리 빠진다”는 얘기를 듣고 집에 있는 모자를 전부 없애버렸다. 하지만 사실은 모자가 머리를 꽉 조여 혈액 공급에 영향을 줄 정도가 아니라면 탈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탈모의 치료·예방 효과를 표방하는 각종 제품에 적힌 부정확한 정보나 과장 광고도 적절한 치료를 늦추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전문의약품을 제외한 탈모관리 제품 중 의약외품에는 ‘탈모 방지’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모발과 두피를 청결하게 관리해 염증성 탈모증 등을 방지한다’는 뜻인데도 ‘남성형 탈모증 등에서 비롯된 모발의 탈락 자체를 방지할 수 있다’는 의미로 잘못 해석될 소지가 있다는 것. 한 피부과 전문의는 “‘모발 굵기 증가’ 역시 ‘모발에 수분을 공급해 일시적으로 굵기 증가를 유도한다’는 뜻이지만 수분·영양 부족이 아닌 다른 이유로 모발이 서서히 가늘어지는 탈모증에도 효과가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해당 표현을 ‘탈모 증상의 완화 보조’ 등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탈모병원’ 적극적으로 찾는 60대


지난해 탈모 환자 중 남성 환자가 가장 많이 몰린 연령대는 단연 30대(3만1630명). 취업과 결혼을 앞두고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면역체계가 약해지고 여성호르몬 분비가 줄어들며 여성형 탈모, 원형탈모 등이 시작되는 40대 환자가 가장 많다. 50대부턴 여성 환자가 남성 환자 수를 앞지르기 시작한다.

환자 증가세는 60대가 가장 무섭다. 2010년 3369명이었던 60대 남성 환자는 지난해 5123명으로 무려 52.1%나 늘었다. 같은 기간 60대 여성 환자도 43.6% 늘었다. 30대 남성 환자의 증가폭이 19.2%였고 여성 환자는 오히려 3.8% 줄었던 점을 감안하면 60대 이상 탈모인 사이에서 ‘나는 아직 노인이 아니다’라는 인식과 함께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으려는 환자의 비율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탈모 치료에 들인 1인당 진료비도 60대는 평균 128만6000원으로 30대(114만4000원)보다 많았다.
웹툰 ‘청춘극장’의 주인공이 자꾸만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눈물짓고 있다. 웹툰 ‘청춘극장’ 캡처
웹툰 ‘청춘극장’의 주인공이 자꾸만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눈물짓고 있다. 웹툰 ‘청춘극장’ 캡처

심우영 대한모발학회장(강동경희대병원 피부과 교수)은 “탈모 치료 효과를 본 젊은 환자들이 늘어나자 어르신들도 병·의원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것 같다. 특히 배우자보다 나이 들어 보인다고 느끼는 고령자들이 자신감 회복 차원에서 병원에 많이 온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health&beauty#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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