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식 연세대 양자정보학 교수 인터뷰
0과 1로 연산하는 고전 컴퓨터
‘최소 30억쌍’ 유전정보 못 다뤄
양자컴퓨터로 정밀의료 앞당겨
12일 서울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만난 한남식 연세대 양자정보학과 교수(영국 케임브리지대 밀너의약연구소 AI연구센터장). 이병구 동아사이언스 기자 2bottle9@donga.com
“변수가 많고 네트워크가 복잡한 생물학에서는 1+1이 1.9가 되기도 하고 2를 넘기기도 합니다. 강력한 인공지능(AI)도 결국 0과 1만으로 연산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진단·치료 속도와 정확도를 높이려면 0도 1도 아닌 개념을 표현하는 양자기술이 필요합니다.”
최근 만난 한남식 영국 케임브리지대 밀너의약연구소 AI연구센터장은 정부가 AI 시대 과학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시작한 ‘K-문샷’ 프로젝트의 핵심 미션 중 하나인 신약 개발 AI에 대해 “막강한 도구이고 지금도 성장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한남식 센터장은 지난해 9월 연세대 양자정보학과 겸임교수로 부임했다.
한 교수는 현재 인류 의학이 ‘메디신(medicine) 2.0’ 단계에 있다고 설명했다. 시행착오와 경험만으로 이뤄진 과거 ‘메디신 1.0’과 비교하면 다양한 의학 검사 결과를 증거로 진단과 치료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의사의 경험치에 상당 부분을 의존한다는 평가다. 메디신 3.0은 유전자를 포함해 사람마다 다른 특성을 모두 반영하고 임상 결정 근거로 활용해 의사의 경험치 의존을 줄이는 ‘정밀의료’ 단계를 말한다.
대다수의 질환은 사람마다 다른 유전적 배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담배를 한 개비도 피운 적 없는 사람이 폐암에 걸리기도 하고 100세 애연가도 건강한 폐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한 사람의 유전 정보를 모두 담은 염기서열은 30억 쌍이 넘는다. 수십만∼수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의 염기서열을 분석·비교해야 유의미하고 임상에 적용 가능한 공통점을 도출할 수 있다. 현존 컴퓨터로는 계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접근이 불가능한 방법이다.
양자컴퓨터는 어떤 물리적 상태가 하나로 정해지지 않고 여러 상태가 확률적으로 동시에 존재하는 양자중첩 현상을 활용한 정보처리 단위 ‘큐비트(qubit)’로 계산을 수행한다. 여러 변수를 병렬적으로 한 번에 계산할 수 있다. 기존 컴퓨터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사실상 계산이 불가능한 특정 유형의 문제를 푸는 데 적합하다. 메디신 3.0 달성에 양자기술이 필수적인 이유다.
한 교수팀은 양자컴퓨팅 알고리즘의 일종인 ‘양자 보행(Quantum Walk)’을 활용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장기 후유증 ‘롱코비드’와 연관된 생체 지표를 전통적인 방식보다 정확하고 빠르게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결과는 2월 15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바이오인포매틱스 어드밴시스’에 공개됐다.
양자 알고리즘은 고전 컴퓨터가 놓친 롱코비드의 핵심 메커니즘인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 신경 염증 등을 정확히 짚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에서 에너지 생산을 담당하는 소기관이다.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을 조절하는 단백질군 2종이 새로운 롱코비드 치료 표적으로 발굴됐다.
한 교수는 “양자 알고리즘이 단순한 연산력 강화를 넘어 임상·의료적으로 가치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컴퓨터공학부터 생물학까지 두루 공부한 연구자로 밀너의약연구소에서 신약 개발 연구를 이끌고 있다. 10년 넘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임상데이터를 받아 협력 연구를 수행한 인연이 이번 겸임교수 부임까지 이어졌다.
한 교수는 2024년 인천 연세대 송도캠퍼스에 설치된 미국 IBM의 양자컴퓨터를 적극 활용해 혁신적인 연구를 이어 나갈 계획이다. 그는 “가장 복잡한 생체 네트워크로 꼽히는 사람의 뇌신경계를 양자컴퓨터로 구현하고 분석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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