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70대, 당구는 700점…‘그라운드의 여우’ 김재박, 브라보 ‘럭키 세븐’ 라이프[이헌재의 인생홈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5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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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레전드 40인데 선정됐던 김재박 전 LG 감독이 지난해 시구를 하고 있다. 명 유격수였던 그는 투수 못지않는 멋진 투구폼을 던지고 있다.     동아일보 DB
KBO레전드 40인데 선정됐던 김재박 전 LG 감독이 지난해 시구를 하고 있다. 명 유격수였던 그는 투수 못지않는 멋진 투구폼을 던지고 있다. 동아일보 DB

야구 기록에서 유격수의 수비 위치를 뜻하는 숫자는 ‘6’이다. 그런데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또는 대표했던 유격수들 중에는 등 번호로 ‘7’을 선택한 선수들이 많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샌디에이고에서 뛰는 김하성이 대표적이다. 한국야구의 명 유격수 계보를 이었던 박진만(삼성 감독), 이종범(KIA 코치), 류중일(항저우 아시아경기 대표팀 감독) 등도 현역 시절 모두 7번을 달았다.

하지만 원조 7번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김재박 전 LG 감독(69)이다. 고교 시절까지 1번을 달았던 김 전 감독은 영남대에 진학하면서 7번으로 바꿨고, 이후엔 줄곧 7번을 달았다. 1977년 실업야구 한국화장품에 입단한 김 전 감독은 데뷔 첫해 7관왕의 신화를 썼다. 그해 니카라과에서 열린 제3회 슈퍼월드컵에서는 타격, 최다안타, 도루 3관왕에 오르며 한국의 우승의 일등공신이 됐다.

1990년 MBC 청룡에서 LG 트윈스로 팀 새출발한 뒤 곧바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때도 그의 등 번호는 7번이었다. 김 전 감독은 1996년 현대 유니콘스 창단 감독으로 부임한 뒤에는 4차례나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지도자가 된 뒤 그는 70번을 달았다. 그의 야구 인생에는 언제나 ‘럭키 세븐’이 함께 하고 있었다.

LG 감독 시절의 김재박 감독 .                 동아일보 DB
LG 감독 시절의 김재박 감독 . 동아일보 DB

1970~1980년대까지 그는 한국에서 야구를 가장 잘 하고, 가장 인기가 많은 선수였다. 얼마나 인기가 많았던지 각종 CF 모델 섭외 1순위로 꼽혔고, 만화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야구만 잘했던 게 아니었다. 공을 가지고 하는 건 뭐든 잘했다. 대표적인 게 당구다. 한창때 그의 공인 당구 점수는 700점이었다. 김 전 감독은 “영남대 야구부 창단 멤버로 들어갔는데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아 시간이 많았다. 그때 집중적으로 쳤더니 당구 실력이 부쩍 좋아졌다. 요즘은 당구를 자주 치지 않아 실력이 좀 줄었다”며 웃었다. 오른손과 왼손을 가리지 않는 ‘스위치 타법’을 구사하는 그는 야구계의 당구 최고수로 꼽힌다.

축구나 배구, 농구 등도 수준급이었다. 어릴 때부터 각종 공을 갖고 놀았다는 그는 “영남대 시절 교양 과목 중에 축구, 배구, 농구 등이 있었다. 야구 훈련 때문에 다른 종목을 연습할 시간이 없었지만 실기 시험을 칠 때 딱 한 번 가서 하기만 하면 무조건 A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가 잘하는 공놀이 중 빼놓을 수 없는 건 골프다. 그는 야구인 골프대회의 단골 손님이었다. 한창때는 70대 초반을 밥 먹듯이 쳤고, 요즘도 70대 후반을 친다. 그는 “예전에 비해 거리가 많이 줄었다. 그래도 스코어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원래부터 비거리보다는 쇼트 게임에 강했다”고 했다.

실제로 그와 골프를 쳐 본 사람들은 다소 엉성한 그의 스윙폼에 놀란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자세로 70대 스코어를 치는 걸 보고 또 한 번 놀라게 된다고 한다.

그의 스윙에는 여전히 야구 스윙 자세가 남아 있다. 홈런을 펑펑 쳤던 야구와는 달리 다른 야구 선수 출신에 비해 거리도 그리 멀리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세밀한 감각이 필요한 어프로치샷과 퍼팅으로 이 모든 단점을 상쇄시킨다.

김재박 전 감독이 2019휴온스 셀리브리티 대회 때 드라이버샷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김재박 전 감독이 2019휴온스 셀리브리티 대회 때 드라이버샷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김재박 전 감독의 골프 스윙.  야구 스윙의 느낌이 많이 남이 있지만 정확성은 뛰어나다.  김재박 전 감독 제공
김재박 전 감독의 골프 스윙. 야구 스윙의 느낌이 많이 남이 있지만 정확성은 뛰어나다. 김재박 전 감독 제공
김 전 감독이 골프를 처음 시작한 것은 선수 시절 말엽이던 1980년대 후반이었다. 골프채를 사자마다 곧바로 필드로 나갔다. 당연히 처음엔 헛스윙하기 일쑤였다. 굴려서 홀까지 간 적도 많다. 그런데 어는 순간 공이 맞아 나가더니 2년 만에 싱글 플레이어가 됐다.

하지만 그는 이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그는 “야구나 골프나 모든 스포츠는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 감각이 좋아 골프가 빨리 늘었지만 기본기가 없다 보니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쳤다. 처음부터 제대로 배웠다면 훨씬 잘 쳤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처음 골프를 시작하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레슨을 받을 것을 권한다. 그는 “기본기를 철저히 하려면 1년 이상은 레슨을 받는 게 좋다. 처음엔 귀찮고 번거로울 수 있지만 언젠가는 그 값어치를 하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김재박 전 감독이 우럭을 낚아 올리고 있다. 섬세한 손 감각을 가진 그는 요리도 잘 한다. 김재박 전 감독 제공

한국 나이로 70세이지만 그는 여전히 몸관리를 잘 한다. 야구 유니폼을 입고 있을 당시 그는 몸무게를 77kg으로 유지했다. 감독을 그만둔 후 60kg대 후반까지 몸무게를 줄여본 적도 있지만 10년 가까이 72kg 안팎의 유지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고기나 야채 등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다만 점심을 조금 많이 먹었다고 느끼면 저녁 식사량을 조절하는 식으로 몸무게를 유지하려 한다”고 했다. 이틀에 한 번은 빠른 걸음으로 70~80분을 걷고, 피트니스 센터에서 근육 운동도 꾸준히 한다.

그는 가장 큰 효과를 본 운동으로 팔굽혀펴기를 꼽았다. 하루에 150~200회를 꼭 한다. 한 번에 30개씩 5~7세트를 하면 된다. 김 전 감독은 “몇 해 전 어깨가 아파서 팔굽혀펴기를 시작하게 됐다. 하면 할수록 어깨 통증이 줄어들더니 몇 달 후부터는 통증이 아예 사라져 버렸다. 가벼운 맨몸 운동인데도 팔굽혀 펴기를 하니 손목이나 팔꿈치, 어깨 등에 아픈 곳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 선수나 감독 생활을 할 때 부상을 당한 선수들을 많이 보지 않았나. 수술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아픈 부위 주변을 강화시켜서 낫게 하는 방법도 있다. 흔히 재활이라고 하는 게 아픈 부위의 주변을 강화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야구 선수로 또 지도자로 누구보다 화려한 야구 인생을 보냈던 김 전 감독이지만 항상 꽃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경북중에 다닐 때 그는 야구부 안에서 가장 키 작고, 발이 느리고, 어깨가 약한 선수였다. 때문에 대구 지역 엘리트 야구 선수들이 가는 야구 명문 경북고에 가지 못했다. 서울에 새로 창단한 대광고에 진학해야 했고, 고교에서도 딱히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 서울에 있는 대학교가 아닌 새로 창단한 영남대에 가야 했다.
그의 야구 인생이 바뀐 것은 영남대 1학년 때 배성서 감독을 만난 후였다. 대학교 1학년 때 그는 죽을 힘을 다해 훈련에 매진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체조 선수들과 함께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고, 주력을 키우기 위해 육상부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하늘이 그의 노력을 가상하게 봤는데 그는 1년새 키가 12cm가 크고 힘도 부쩍 좋아졌다.

김 전 감독은 “1년간 미친 듯이 훈련을 했더니 어깨가 강해지고 발도 빨라지고 파워도 생겼다. 이 3박자가 이뤄진 뒤 내 야구 인생이 새로 꽃피기 시작했다”며 “후배 선수들에게도 이런 얘기를 좀 해주고 싶다. 프로에 갈 만한 선수라면 누구도 모르는 재능이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 나이로 70세인 김재박 전 감독은 여전히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 이헌재 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유행 전까지 재능기부 등을 통해 야구와의 인연을 이어왔던 그는 여전히 애정 어린 눈으로 한국 야구를 바라보고 있다. 그가 감독 시절 데리고 있던 선수 중 염경엽(LG 감독), 박진만(삼성 감독), 서튼(롯데 감독), 홍원기(키움 감독) 등 4명이 프로 사령탑을 맡고 있다. 그는 “나는 천상 야구인이다. 야구와 관계된 일을 통해 한국 야구에 기여하고 싶다. 언젠가 올 수 있는 기회를 위해 항상 준비하고 있다. 다음 번 유니폼을 입을 땐 ‘77번’을 달고 싶다”며 웃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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