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은 끝났다? 이제 시작이다!

동아닷컴 입력 2020-09-16 18:20수정 2020-09-1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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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밸브(Valve)가 자사의 대표 프랜차이즈 신작 '하프라이프: 알릭스(Half-Life: Alyx)' 출시를 3월 23일로 발표했다.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그간 공백기로 불렸던 시리즈 1편과 2편 사이의 이야기를 담았다. 프랜차이즈의 주인공이었던 고든 프리먼이 G맨에 의해 동면된 시기임에 따라 2편의 핵심 인물이었던 알릭스 밴스가 새로운 주인공으로 플레이어와 함께한다. 참고로 밸브는 하프라이프, 도타2 등으로 유명한 게임 개발사이자, 세계 최대 게임 다운로드 플랫폼으로 인정받고 있는 스팀(Steam) 운영사다.

약 반년 전 출시한 게임 하프라이프: 알릭스를 지금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발매 후 성적을 보자. 스팀을 통해 선보인 하프라이프는 출시 일주일 만에 100만 달러(한화 약 11억 원) 매출을 달성했고, 출시 한 달 뒤에 4,070만 달러(한화 약 480억 원) 매출을 올렸다. 그리고 출시 두 달 후 거둔 매출은 1억 2,000만 달러다. 한화 약 1,410억 원에 달하는 수준.

하프라이프: 알릭스 이미지, 출처: 밸브

하프라이프: 알릭스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그저 많이 팔린 게임 중 하나가 아니다. 가상현실(VR) 게임이다. VR 게임으로 한정할 경우, 하프라이프: 알릭스의 매출은 기념비적인 성과다. 약 5년 전부터 차세대 콘텐츠, 4차 산업 혁명 중 하나 등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VR은 내세울 만한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VR을 3D TV처럼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것 아니냐고 평가하기도 했다.

VR은 미래를 변화시킬 콘텐츠 중 하나라고 항상 꼽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제조사마다 다른 HMD, 통일화되어 있지 않은 VR 운영체제, 원활한 VR 실행을 위해 필요한 고성능 PC, 부담스러운 가격, 아직 매끄럽지 못했던 VR 제작 기술, 현실과 VR 사이에서 느껴지는 이질감(멀미 현상), 대표할만한 킬러 타이틀의 부재 등… 해결해야 할 문제만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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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전망이 없지는 않았다. 타개책으로 나왔던 것이 VR 테마파크다. 디즈니랜드에 직접 가지 않아도 롤러코스터를 즐길 수 있고,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스카이다이빙을 즐길 수 있었다.

국내 도심형 VR 테마파크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던 ‘몬스터VR’ 내 시네마존

VR 테마파크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즈음, 문제가 발생했다. 올해 초 전세계에서 확산해 아직까지 현실의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19다. VR 테마파크는 적은 공간에 놀이기구(어트랙션)을 밀집해 설치한다. 그리고 대부분 실내에 있다. 사람과의 만남이 치명적인 코로나19로 인해, VR 테마파크를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그야말로 뚝 끊겼다. 이미 존폐 기로에 들어선 업체도 상당수다.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이 같은 현실 속에서 갑자기 등장했다. 3월 출시 이후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 자택에 머물기 시작한 행동 변화와 기존에 보지 못했던 실감나는 VR 콘텐츠에 사람들이 매료됐다. 실제로 부담스러운 고가의 HMD를 구매하는 사용자가 늘었다. 4월, VR HMD을 보유한 스팀 사용자는 1.29%에서 1.91%로 50% 증가했고(약 200만 대), 하프라이프: 알릭스를 통해 VR을 접하는 사용자가 등장했다.

마치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고퀄리티 그래픽을 요하는 인기 게임 출시와 함께 고성능 그래픽카드, 차세대 프로세서(CPU) 등을 탑재한 PC 판매가 늘어나 현상과 같다.

HMD 보급 증가는 VR 콘텐츠 전체 시장에 긍정적인 소식이다. VR을 즐기기 위한 여러 조건 중 하나에 사람들이 거부하는 심리적 방어선을 무너뜨렸다. 그 시작이 무엇이든, 꼭 필요한 과정 중 하나다. 잘 만든 VR 콘텐츠는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탄을 하프라이프: 알릭스가 쏘아 올렸다.

VR도 콘텐츠로 성공할 수 있다

이정표다. 하프라이프: 알릭스의 성과는 침체된 국내 VR 콘텐츠 업계에도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코로나19로 주춤하고 있는 (사실상 올인했던) VR 테마파크 이후를 기약할 수 있다. 글로벌 VR 현황도 긍정적이다. 소셜 VR 플랫폼 ‘VR CHAT’은 2019년 1,000만(한화 약 119억 원) 달러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유치해 누적 투자 금액은 1, 520만 달러(한화 약 181억 원)에 이른다. 같은 소셜 VR 플랫폼 ‘cluster’도 올해 8.9억 엔(한화 약 89억 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유치, 누적 투자 금액은 약 162억 원을 달성했다. 이외에도 소셜 VR 플랫폼 ‘REC ROOM’, VR 영상 플랫폼 ‘THE VOID’ 등이 2,000만 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

자료 제공: 국내 VR/AR 스타트업 브래니(VRANI)

2019년 5월 21일, 오큘러스는 VR HMD ‘오큘러스 퀘스트’를 출시한 뒤 2019년 말까지 누적 판매량 400만 대를 달성했다. 또한, 내년 상반기 새로운 VR HMD를 보다 저렴한 가격에 출시해 시장을 견인할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로 오큘러스 퀘스트 출시 이후 VR 스토어 ‘오큘러스 스토어’ 매출은 10배 이상 증가한 바 있다. Digi Capital, 삼성증권 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과거 대표적인 VR/AR HMD 출시와 함께 VR에 대한 투자는 크게 늘었다. 그만큼 내년 VR 시장 전망은 긍정적이다.

자료 제공: 국내 VR/AR 스타트업 브래니(VRANI)

2015년 이후 국내 VR 업계 상황은 좋지 않았다. VR 플랫폼, VR 저작도구, VR HMD 등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코로나19라는 전세계적인 위기와 함께 ‘국내 VR 시장은 끝났다’라는 말도 들렸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전화위복처럼, VR 콘텐츠 시장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VR을 활용한 게임, 소셜 플랫폼, 교육 콘텐츠, 문화/예술 콘텐츠 등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얼마 전, VR 시장 확대와 성공을 자신했던 스타트업 브래니의 정휘영 대표는 “아직 브래니는 VR 하나만을 보고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힘들었지만, 5G 보급 증가와 차세대 HMD 출시 등으로 VR 산업 전반 분위기는 좋게 바뀌고 있습니다”라며, “VR 시장은 우리 브래니와 같은 스타트업이 살아야 합니다. 지난 몇 년간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을 얻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올해 초 영국의 대표적인 교육 박람회 ‘BETT’에 참가하며 주목 받았던 브래니 전시 모습, 출처: 브래니

다시 뛸 수 있다. 어려운 상황과 위기 속에서도 아직 도전하고 있는 플레이어가 있다. 그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VR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다.

동아닷컴 IT전문 권명관 기자 tornados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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