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너 없으면 4년내 멸망? 꿀벌아 지구를 지켜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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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현실, 꿀벌 대소동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위치한 도심 농장인 ‘브루클린 그레인지’에서 한 시민이 꿀벌들을 살펴보고 있다. 꿀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뉴욕을 비롯해 영국 런던, 일본 도쿄 등 주요 도시에서 ‘도심 양봉’이 확산되고 있다. 브루클린 그레인지 제공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위치한 도심 농장인 ‘브루클린 그레인지’에서 한 시민이 꿀벌들을 살펴보고 있다. 꿀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뉴욕을 비롯해 영국 런던, 일본 도쿄 등 주요 도시에서 ‘도심 양봉’이 확산되고 있다. 브루클린 그레인지 제공
지난달 15일 전남 나주시의 ‘한배농원’. 하얀 꽃봉오리가 터져 오르는 배나무 사이로 인부들이 면봉을 들고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은 배꽃의 암술머리에 면봉으로 꽃가루를 조심스레 발랐다. 원래 꿀벌들이 배꽃 사이를 오가면서 해야 할 꽃가루받이, 즉 수분(受粉)을 사람이 하는 것이었다.

한배농원이 이렇게 인공수분을 시작한 건 2008년부터다. 벌들은 날씨가 따뜻해야 잘 날아다니며 수분을 한다. 그러나 봄철 한파 등 이상기온이 이어지자 벌 대신 사람이 나서야 했다. 이날 역시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청명(淸明)이 지난 지 열흘이나 됐는데도 공기 중에는 한기(寒氣)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농원이 꽃가루받이에 동원한 인부는 30여 명. 인공수분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려면 이슬이 남아 있거나 비가 와도, 바람이 많이 불어도, 너무 어두워도 안 된다. 게다가 배꽃의 개화부터 낙화까지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인공수분을 끝내려면 서둘러야 한다. 이 때문에 농장 측은 광주까지 가서 인부들을 불러왔다. 권상중 한배농원 사장(53)은 “벌을 이용한 수분이 최선이지만 사람이 날씨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지 않으냐”며 “비싼 인건비 때문에 인공수분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상당수의 농작물이 꿀벌의 수분 활동을 매개로 열매를 맺는다. 사진은 미국 유기농 슈퍼마켓인 ‘홀푸드’의 신선식품 코너(위쪽 사진)에서 꿀벌이 세상에 없을 경우를 가정해 연출한 것(아래쪽 사진)이다. 꿀벌이 없을 경우의 매장에서는 사과와 체리, 양파, 레몬, 오렌지, 오이 등의 판매대가 텅 비어 있다. 홀푸드 제공
상당수의 농작물이 꿀벌의 수분 활동을 매개로 열매를 맺는다. 사진은 미국 유기농 슈퍼마켓인 ‘홀푸드’의 신선식품 코너(위쪽 사진)에서 꿀벌이 세상에 없을 경우를 가정해 연출한 것(아래쪽 사진)이다. 꿀벌이 없을 경우의 매장에서는 사과와 체리, 양파, 레몬, 오렌지, 오이 등의 판매대가 텅 비어 있다. 홀푸드 제공
꿀벌의 경제적 가치

이는 꿀벌의 중요성을 잘 알려주는 사례다. 꿀벌은 배뿐만 아니라 사과 배 참외 고추 수박 등 꽃을 피우는 대다수 식물의 수분을 돕는다. 인류가 먹는 식량의 3분의 1은 꿀벌 등 곤충의 수분활동을 필요로 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100대 농작물의 71%가 꿀벌에 의존하고 있다.

꿀벌이 사라지면 농산물의 양과 종류가 그만큼 줄어들고 인류가 식량 부족에 처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지구상에서 꿀벌이 사라지면 4년 이내에 지구가 멸망한다”고 말한 것도 충분히 근거가 있다.

한배농원처럼 인공수분을 하는 배 농가가 많아지면서 배 꽃가루 수입량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배 꽃가루의 경우 90%를 중국에서 들여온다. 2012년 1297kg이었던 배 꽃가루 수입량은 2013년 1822kg, 2014년 2170kg(1∼8월)으로 늘었다.

요즘엔 자연수분을 이용하려는 농가들이 다른 곳에서 양봉 꿀벌을 가져와 농장에 풀어놓곤 한다. 꿀벌의 활동 반경은 보통 최소 2km 정도 되지만 기온이 떨어지면 벌들이 벌통 주변만 맴돌고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국내 농가들은 꿀벌 임대에 연간 약 300억 원을 쓰고 있다.

실제로 꿀벌의 ‘노동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정철의 안동대 교수팀의 2008년 연구에 따르면 국내 농작물의 수분과 관련한 꿀벌 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약 6조 원에 달한다. 이는 16개 주요 과수 및 채소류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다.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도 전 세계적으로 꿀벌의 수분 가치가 최소 2650억 유로(약 33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유럽에서는 농업과 임업 관련 생물자원 중 꿀벌의 경제적 가치가 소, 돼지에 이은 3위라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꿀벌 실종 사건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인구가 늘면서 꿀벌이 수분해야 할 작물도 많아졌지만 꿀벌이 여러 이유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미국과 유럽, 호주 등지에서는 꿀벌 개체 수가 줄었다는 관측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미국의 22개 주에서는 2006년부터 2007년 사이 꿀벌의 수가 25∼40%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에 ‘집단벌집붕괴현상(CCD·Colony Collapse Disorder)’이란 이름을 붙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오로지 꿀벌에만 수분을 의존하는 아몬드 농가가 직격탄을 맞았다. 흉년이 든 아몬드 가격은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어 과자와 사탕 등 아몬드가 들어간 먹을거리 가격이 연쇄적으로 올랐다. 사과와 블루베리 농가도 직·간접적 피해를 봤다.

이런 피해가 이어지자 미국 정부는 지난해 농무부 장관과 환경보호청장을 공동 의장으로 하는 ‘꽃가루 매개자 건강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약 5000만 달러를 투입해 꿀벌 등 꽃가루 매개 곤충의 보존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CCD의 원인은 아직도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지만 농약 중독, 밀집 사육, 전자파 등이 주요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농약 중에서는 살충제인 네오니코티노이드가 꿀벌 떼죽음의 주범으로 의심받고 있다. 이 농약이 흡수된 식물의 꽃가루를 먹은 꿀벌은 신경계 이상 증세를 보이며 바로 죽는다. 이런 이유로 유럽연합(EU)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네오니코티노이드 성분이 함유된 농약의 사용을 한시적으로 금지했다.

이 외에도 지구 자기장을 이용해 방향을 인지하고 이동하는 꿀벌이 무선통신 장비의 전자파로 인해 벌집에 되돌아가지 못한다거나 밀집 사육으로 꿀벌의 면역력이 약해져 병에 잘 걸리게 됐다는 등의 가설도 있다.

국내에서도 CCD는 아니지만 ‘꿀벌 에이즈’로 불리는 낭충봉아부패병이 확산하면서 토종벌의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2010년에는 이 병으로 인해 토종벌 개체 수가 전년보다 75%나 감소했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토종벌 수는 현재 회복세에 있지만 살충제와 이상 기후 등에 따른 꿀벌 감소 가능성은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달콤한 꿀벌들의 도시… ‘작은 변화 꿈꾼다’

한편 이처럼 꿀벌들이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도시에서 벌을 키워 보자는 움직임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뉴욕 최대의 도심 농장인 ‘브루클린 그레인지’에 들어서면 붕붕거리는 꿀벌의 날갯짓 소리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미국 뉴욕의 이스트 강을 끼고 있는 11층짜리 건물 옥상에 펼쳐진 약 4만 m² 규모의 텃밭이 벌들의 활동 무대다.

텃밭에 놓은 벌통은 30개. 브루클린 그레인지 농장은 이 벌통에서 생산된 벌꿀과 프로폴리스(꿀벌이 만들어 내는 항염·항산화 물질) 등을 파머스마켓(농부들의 직거래 장터)에 판다. 또 뉴욕 맨해튼의 뱅크오브아메리카 옥상 등에서도 꿀벌을 기르며 뉴욕 시민들에게 양봉을 가르치고 꿀벌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도심이 오히려 꿀벌을 기르기에 좋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프랑스양봉협회에 따르면 겨울 동안 꿀벌의 생존율은 도시에선 62.5%이지만 농촌에선 40%에 그칩니다. 도시에서는 열섬 현상이 일어나 기온이 상대적으로 따뜻하기 때문이죠. 또 농촌에는 작물의 수가 한정적이지만 도시에는 공원이 많아 꽃과 식물 종류가 다양합니다. 그만큼 벌들의 먹이가 다양해 벌꿀의 질도 좋습니다.”(벤 플래너 브루클린 그레인지 대표)

일본 도쿄(東京)의 쇼핑거리인 긴자(銀座)는 어느새 ‘꿀벌 천국’이 됐다. 2006년부터 건물 옥상에서 양봉을 하는 ‘긴자 꿀벌 프로젝트’가 시작된 덕분이다. 긴자에서는 연간 300kg의 벌꿀이 생산된다. 이 꿀은 인근의 화과자(和菓子·일본 전통과자) 전문점과 프랑스 레스토랑 등의 식재료로 쓰이거나 화장품 생활용품 등의 재료로 팔린다. 판매 수익은 긴자의 환경 보호와 무농약 농가 지원 등에 쓰인다. 영국 런던에서도 현재 자연사박물관과 테이트모던미술관, 런던 주식거래소, 포트넘앤드메이슨백화점 등 건물의 옥상에서 벌을 기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 남산과 서울 강동구 도심텃밭, 서울 중구 명동 유네스코회관, 서울 서초구 서울연구원 등에서 도심양봉을 하고 있다. ‘어반비즈서울’이라는 단체는 서울시내 12곳에서 벌을 기르고 있다. 이들은 영국의 잼 제조업체인 슈퍼잼에 국내 판매용 벌꿀을 납품하기도 한다. 대전에도 도심 양봉장이 10여 곳이 있으며 인천 송도고는 학생들에게 꿀벌 키우기를 가르치는 등 일선 학교도 양봉에 나서고 있다.

시민들이 벌을 기르고 싶어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어반비즈서울이 양봉 교육 희망자 230여 명을 대상으로 양봉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설문조사한 결과 ‘새로운 문화를 경험해 보고 싶어서’(32.0%), ‘꿀벌을 살려 지구를 지키고 싶어서‘(21.0%) 등의 답변이 나왔다.

서울 강동구의 도심텃밭에서 취미 삼아 양봉을 하다가 ’강동도시양봉농업협동조합‘을 꾸리고 양봉사업에 뛰어든 신만희 씨(56)는 이렇게 말한다.

“꿀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내가 매일 먹는 과일이나 채소도 구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다 양봉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내가 하는 작은 실천이 지구의 생태계를 유지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뿌듯할 수밖에요.”

6일 서울 남산공원에서 서울시 중부공원녹지사업소가 개최한 ‘양봉학교’에서 서울 시민들이 꿀벌 기르기 체험을 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6일 서울 남산공원에서 서울시 중부공원녹지사업소가 개최한 ‘양봉학교’에서 서울 시민들이 꿀벌 기르기 체험을 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꿀벌 수 세계 12위… 양봉농가는 10여년새 반토막▼

한국 양봉의 현주소

현재 국내에서 벌을 키우는 농가는 2만 곳 안팎이다. 농림축산식품 주요 통계에 따르면 전국 양봉 농가는 2002년 4만5100곳으로 정점을 찍은 후 계속 감소세를 보여 왔다. 이는 2000년대 들어 낭중봉아부패병 피해로 토종벌 농가가 줄어든 데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토종벌 감소가 국내 생태계와 양봉산업에 미친 영향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국내의 양봉 벌은 유럽이 원산지인 서양종 꿀벌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2013년 국내 토종벌 사육 규모(9만8000통)는 전체(175만6000통)의 5.6%에 그쳤다. 서양종 꿀벌은 1910년대 독일계 신부가 일본을 통해 벌통을 수십 통 들여온 것이 시초다.

국제적으로 보면 한국은 꿀벌 수가 많은 편(12위·이하 모두 2012년 기준)이며, 특히 단위 면적당 꿀벌 사육 개체 수는 세계 1위다. 한국의 km²당 벌통은 18.5개로 2위 그리스(10.4개), 3위 헝가리(8.2개), 4위 터키(7.8개)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한국 양봉업은 생산성이 매우 낮은 편이다. 국내의 벌통 1개에서 생산되는 꿀은 14.02kg으로 베트남(70.86kg), 호주(60.40kg), 중국(41.87kg)보다 훨씬 적다. 이는 꿀벌의 먹이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어려운 자연환경 때문이다. 국내 꿀벌의 70%가량은 아까시나무를 밀원(蜜源)으로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상기온으로 아까시 꽃이 전국에서 동시에 피면서 양봉업자들이 예전처럼 벌통을 트럭에 싣고 남에서 북으로 이동하며 꿀을 채취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이명렬 농촌진흥청 잠사양봉소재과 농업연구관은 “꿀벌이 제대로 먹이를 섭취하지 못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며 “앞으로 꿀벌의 밀원을 더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양봉#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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