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췌도 이식 원숭이 7개월 생존… 당뇨병 완치 ‘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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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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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회 서울대 의대 교수팀 성공


평생 혈당에 신경 쓰고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당뇨병 환자에게 완치의 가능성이 열렸다. 국내 연구진이 돼지의 췌도(췌장섬)를 당뇨병 원숭이에게 안정적으로 이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서울대 의대 박성회 교수팀은 돼지의 췌도를 이식받은 원숭이가 이식 거부반응 없이 6개월 넘게 생존했다고 31일 밝혔다. 췌도는 인슐린을 생성해 혈당을 조절하는 기관이다. 박 교수팀은 혈당이 450이 넘는 당뇨병 원숭이에게 무균돼지의 췌도를 이식했다.

이번 연구에 사용된 무균돼지는 일반 돼지의 3분의 1 크기인 70kg 정도로 돼지의 장기가 사람의 당뇨병 치료에 쓰이는 것은 돼지의 인슐린과 사람의 인슐린이 거의 같기 때문이다. 이 무균돼지들은 미국 시카고대 의대 김윤범 교수가 개발해 2004년 서울대에 기증한 것으로, 현재 100여 마리가 서울대에서 사육되고 있다. 연구팀은 이 가운데 원숭이 여덟 마리에게 돼지의 췌도 세포를 이식했다.

연구팀이 새롭게 개발한 1종의 면역조절항체와 2종의 보조 억제제를 함께 투여한 결과 원숭이들은 6개월 넘게 혈당수치를 평균 83으로 유지했다. 특히 이식한 지 4개월 뒤에는 면역억제제를 쓰지 않았는데도 이식 거부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종끼리의 이식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세계 최초다.

○ 면역억제제 수 줄이고 부작용과 거부반응까지 해결

연구팀은 여덟 마리의 원숭이에게 돼지의 췌도 세포를 이식했지만 10cm가량이나 되는 췌도 전체를 떼어 내 원숭이한테 이식한 것은 아니다. 돼지의 췌장을 잘라낸 뒤 이 중 수백 개에서 수천 개씩 뭉쳐 있는 인슐린 분비세포만 분리해 생리식염수 등에 섞어 원숭이의 간을 관통하는 혈관(간문맥)에 주사하는 방식을 썼다. 췌장에는 소화액을 분비하는 세포가 90%고, 인슐린 분비세포는 10% 정도이기 때문에 세포분리가 이식과정의 핵심이다.

연구팀은 현재 이식한 췌도가 7개월 동안 건강하게 살아있고 각종 수치가 정상 범위에 머무는 것을 보면 앞으로 1∼2년, 더 나아가 평생 생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원숭이 여덟 마리 가운데 이식한 췌도의 생존 기간이 6개월이 넘는 원숭이가 네 마리 이상이어서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임상시험 허가 기준도 충족했다.

이는 곧 사람에게 돼지의 췌도를 이식해 당뇨병을 완치하는 일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까지 사람의 췌도를 이식하려면 회수율이 떨어져 뇌사자 두 명이 필요했다. 이종이식이 대안인 상황에서 구하기 쉬운 돼지가 주요 연구 대상으로 쓰였다.

○ 이종 간 장기이식에 새 이정표

외국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있었지만 4, 5개의 면역억제제를 지속적으로 써야 했다. 부작용 때문에 면역억제제를 중단하면 이식 거부반응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번 연구는 이식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를 해결했다는 측면에서 획기적인 기술적 진보로 인정받는다.

특히 유전자 조작을 거치지 않은 돼지의 장기를 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금까지 주류를 이뤄 온 이종 간 장기이식 연구는 사람의 면역유전자를 넣은 형질전환 돼지를 이용한 게 대부분이었다. 이는 돼지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면역거부반응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반대로 이런 면역유전자가 환자에게 이식된 이후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점이 상용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됐다. 면역억제제 투여를 중단한 후에도 이식 거부반응이 발생하지 않은 점은 사람 간의 동종이식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다.

이 연구는 의학 및 면역학 분야의 저명지 ‘실험의학저널’ 24일자에 소개됐을 뿐 아니라 지난주 미국에서 열린 2011년 세포이식학회-세계이종이식학회 합동회의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며 주목을 받았다.

박 교수는 “앞으로 면역억제가 일어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혀 임상시험 도중에 있을지 모를 위험에 대비하겠다”며 “골수나 간 이식에도 활용 가능성이 높은 만큼 세계 면역억제 연구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보건복지부 보건산업기술과 정통령 사무관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에 앞서 더 많은 데이터를 쌓아 안전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면서도 “이번 연구로 당뇨병 정복으로 가는 큰 걸음을 내디뎠다”고 말했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기자 ilju2@donga.com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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