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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9월 25일 0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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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22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반지하방에 침입했던 30대 중반의 남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서울지역 연쇄살인사건으로 고심하던 경찰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강도 현행범인 이 남자가 갖고 있던 레포츠용 장갑을 조사했다.
의외의 성과가 나왔다. 이 남자의 장갑흔(掌匣痕·장갑 접촉면 형태)이 한 달쯤 전인 그해 3월 27일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 관악구 봉천동 단독주택 방문 손잡이에서 나온 장갑흔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 남자를 추궁한 끝에 그가 13명의 무고한 생명을 살해한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 과학수사와 관련한 기사를 스크랩하며 완전범죄를 꿈꾸었던 희대의 살인마 정남규는 이렇게 검거됐다. 그는 강도 현행범으로 체포될 때까지 모두 24번의 범행에서 유일하게 장갑흔 하나만을 단서로 남겼다.
충남지방경찰청(청장 박종준)은 이 사건에 착안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중에서 유통되는 국내외산 장갑흔을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했다고 24일 밝혔다. 경찰은 레포츠 장갑과 각종 면장갑, 고무장갑 등 50종 300점의 장갑을 수집해 가변광원 장비와 실체 현미경 등 최첨단 장비를 활용해 장갑흔을 일일이 분류했다. 그동안 경찰이 지문이나 신발 족적을 데이터베이스화해 수사에 이용한 적은 있지만 장갑 문양을 자료로 구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범인들이 장갑을 끼고 전화기와 유리창, 알루미늄 등을 만져 지문을 남기지 않더라도 장갑흔을 활용해 용의자의 범위를 크게 좁힐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목장갑이라도 제조업체에 따라 실의 크기와 직조 방법이 약간씩 차이가 나기 때문에 구별이 가능하다”는 것이 경찰 측 설명이다.
장갑흔 DB를 구축한 최철균 충남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장은 “장갑흔으로 어떤 종류의 장갑인지, 어디에서 생산돼 어떤 지역에서 판매되는 장갑인지 곧바로 식별해낼 수 있기 때문에 용의자의 생활 특성이나 행동반경 등을 추적해 범죄를 재구성하기가 용이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충남경찰청은 7월 22일 천안시에서 발생한 폭행사건의 용의자를 장갑흔 분석을 통해 추적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용의자가 피해자의 집에 침입했을 때 장갑을 끼었다고 해 창문과 문틀 등을 확인한 결과 목장갑이고 기름기가 묻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주변 공장 직원 등을 상대로 수사를 벌여 용의자를 특정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충남지방경찰청은 DB로 구축된 자료를 책자와 CD로 제작해 전국 지방 경찰청에 배부하는 한편 경찰 내부망인 과학수사 포털시스템(SCAS)에 등록해 상시 검색이 가능하도록 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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