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처럼 유연하게…‘인공근육’이 생활을 바꾼다

  • 입력 2009년 3월 27일 02시 58분


가전부터 우주탐사까지 활용폭 무궁

《문어 로봇이 유연하게 여덟 개의 다리를 움직이며 푸른 바닷속 산호 사이를 기어다닌다.

주위에는 작은 로봇 물고기 떼가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헤엄친다.

물고기 위에는 바닷물의 온도와 농도를 측정하는 수 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 크기의 분자기계들이 플랑크톤처럼 유유히 떠다닌다. 이 같은 바닷속 풍경은 과거엔 공상으로만 여겨졌다.

로봇이 유연하게 움직이려면 모터가 달린 관절을 많이 써야 하기 때문이다.

로봇 구조가 복잡해지고 모터를 움직이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 딱딱하고 거친 움직임밖에 나올 수 없었다.》

그러나 전류가 조금만 흘러도 실제 근육처럼 수축하는 ‘인공근육’이 등장하면서 공상과학(SF) 영화에서처럼 유연하게 움직이는 로봇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로봇이 실제 생명체의 움직임을 따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이달 들어 새로운 소재의 인공근육이 잇따라 나오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과학자들은 인공근육이 앞으로 가전제품부터 우주탐사 로봇, 머리카락 굵기보다 더 작은 마이크로전자기계시스템(MEMS) 같은 첨단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활용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전기 통하는 플라스틱이 고무처럼 탄력

이탈리아 국립공대 연구팀은 4일 국제학술지 ‘바이오미메틱스’에 인공근육을 이용한 문어 로봇 다리를 개발해 발표했다.

연구팀은 전기가 통하는 플라스틱인 ‘전기활성고분자(EAPs)’ 물질을 여러 층으로 쌓아 문어 다리를 만들었다. 나머지 다리와 몸통까지 완성하면 진짜 문어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는 문어 로봇을 바다에서 볼 수 있다. 1990년대에 개발된 전기활성고분자 물질은 전류가 흐르면 수축하면서도 가볍고 고무처럼 탄력이 있어 요즘엔 인공근육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 이맥스도 이 물질을 이용해 몇 년 전 물고기 로봇을 개발했다.

온도에 따라 모양이 바뀌는 형상기억합금도 인공근육의 소재로 각광받는다. 특히 형상기억합금 인공근육은 휴대전화 카메라의 자동초점(AF) 기능에 유용하다.

니켈과 티타늄 합금으로 이뤄진 형상기억합금은 열이나 전류를 가하면 줄어드는 성질이 있다. 전류 세기에 따라 줄어드는 길이가 달라지기 때문에 0.1∼0.3mm로 미세하게 조정해야 하는 휴대전화 카메라 같은 초소형 전자제품에 안성맞춤이다.

형상기억합금을 이용해 인공근육 제품을 개발하는 ‘엔티리서치’ 김경환 대표는 “실 형태의 형상기억합금 인공근육은 전류에 따라 원래 길이의 최대 5% 정도, 용수철 형태는 50%까지 줄어든다”며 “소형 전자제품은 물론이고 로봇 팔에도 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DNA-나노 물질 결합 분자기계도 현실로

유전자(DNA)와 나노 물질을 결합한 ‘DNA 인공근육’도 최근 우리나라에서 개발됐다.

포항가속기연구소의 이문호 소장과 진경식 박사, 김선정 한양대 생체인공근육연구단장은 ‘DNA와 풀러렌을 결합한 분자기계’의 작동 방식을 규명했다고 과학 학술지 ‘어드밴스트 머티리얼스’ 온라인판 3일자에 발표했다. 풀러렌은 탄소원자 60개로 이뤄진 축구공 형태의 나노 물질이다.

연구팀은 DNA의 양 끝에 풀러렌을 붙이고 가속기를 통해 구조 변화를 살펴봤다. DNA 길이는 산성에서 4nm로 줄어들고 염기성에서 8nm로 늘어났다. 김 단장은 “산성도와 비례해 수축했다가 늘어나는 DNA 인공근육을 개발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DNA 인공근육은 나노 크기의 MEMS를 만드는 데 응용할 수 있다.

미국 텍사스대 나노기술연구팀은 여러 다발의 탄소나노튜브를 한 방향으로 정렬시킨 ‘에어로겔’ 인공근육을 만들어 ‘사이언스’ 20일자에 발표했다. 에어로겔은 공기만큼 가벼우면서도 강철보다 단단한 물질이다.

에어로겔 인공근육의 가장 큰 특징은 팽창하는 속도와 힘이다. 이 인공근육에 전류를 흘리면 나노튜브 다발 사이가 벌어지며 1초에 1000번 정도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 초속 2m의 속도다. 사람의 근육과 비교하면 30배 정도 강한 힘과 1000배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셈이다. 높은 온도와 압력에도 잘 버티기 때문에 활용할 수 있는 분야가 다양하다. 에어로겔 인공근육은 영하 193도부터 영상 1627도까지 견딜 수 있다.

에어로겔 인공근육 개발에 참여한 미국 댈러스대 연구팀 오지영 박사는 “이 인공근육은 극한 환경에서도 강한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에 로봇 팔과 다리는 물론이고 우주나 심해저를 탐사하는 로봇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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