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고 조이다 밤샘 일쑤… “로봇은 나의 운명”

  • 입력 2006년 6월 8일 03시 00분


‘누가 뭐래도 난 로봇에 푹 빠졌다.’ 로봇 마니아들에게 로봇은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위부터 농촌 총각 안해웅 씨와 그의 로봇 ‘배지기’, 로봇 가족 정균희 씨와 둘째 아들 재헌 군, 정 씨 가족의 주력 로봇인 ‘흑룡’, 로봇 브러더스 이선영 동영 씨와 이들의 로봇 ‘돌격’. 사진 제공 EBS
‘누가 뭐래도 난 로봇에 푹 빠졌다.’ 로봇 마니아들에게 로봇은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위부터 농촌 총각 안해웅 씨와 그의 로봇 ‘배지기’, 로봇 가족 정균희 씨와 둘째 아들 재헌 군, 정 씨 가족의 주력 로봇인 ‘흑룡’, 로봇 브러더스 이선영 동영 씨와 이들의 로봇 ‘돌격’. 사진 제공 EBS
《평범한 남자들이 로봇에 홀딱 반했다. 이들은 로봇을 만들기 위해 밤늦게까지 부품을 깎고 조이고 붙인다. 인공지능 로봇 개발에도 관심이 많다. 이들에게 로봇 제작은 취미가 아니라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로봇협회(KORA)에 따르면 전투 로봇, 축구 로봇 등 로봇을 직접 만드는 동호인은 4000여 명. ‘대한민국 로봇대전’, ‘EBS 로봇 파워’ 등 정기적으로 열리는 로봇 배틀(리모컨으로 로봇을 조종해 상대 로봇과 힘을 겨루는 경기) 대회만 15개에 이른다.》

▼농촌 총각 안해웅씨 “방송보고 반해…전업 생각”▼

“취미 아니야. 내 삶의 전부야!”

경북 봉화군 춘양면 소로1리의 농촌 노총각 안해웅(43) 씨. 그는 농사일 외에 원격조종 로봇 제작에 푹 빠져 있다. 로봇 제작에 필요한 부품을 찾고, 어렵게 발견한 부품을 깎고 조이고 붙이는 일로 하루 일과를 끝낸다.

그가 처음 로봇에 빠진 것은 지난해 9월 TV에서 로봇 배틀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부터.

공고를 나와 특허도 2건 보유한 그는 주변에 굴러다니는 부품들을 모아 한 달 만에 로봇 ‘배지기’를 만들었다. 외피부터 부품까지 직접 제작한 전투 로봇이었다.

지난해 10월 로봇 배틀에 처음 출전한 이후 배지기가 거둔 전적은 4전 4패. 안 씨는 실망하지 않았다.

배지기의 패인을 면밀히 분석해 올해 초 새 로봇 ‘딱정벌레’를 만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1승을 거뒀다.

하지만 농사와 로봇 제작을 병행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부품을 사려고 끌어다 쓴 빚이 늘어나 생활을 옥죄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는 “로봇에 인생을 걸었다”며 “한번 칼을 뽑았으니 끝장을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선영-동영 ‘로봇형제’ 동네 소문난 마니아▼

경기 파주시 금촌동에 사는 이선영(31) 동영(28) 씨 형제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로봇 마니아. 대학에서 각각 전자공학과 컴퓨터언어를 전공한 형제는 현재 같은 로봇 개발 회사의 기획과 개발파트에서 일하고 있다.

2003년부터 한 팀을 이뤄 로봇 경기에 참가해 온 이 형제는 지난해 겨울 나이는 어리지만 로봇에 대한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꼬마’ 친구들을 만났다. 한 동네에 사는 박찬수(9) 기정(8) 군 형제였다.

“찬수와 기정이가 선수 대기실까지 와서는 저희 로봇인 ‘돌격’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꼬치꼬치 캐묻더라고요.”

이후 이들은 틈만 나면 이 씨 형제의 작업실에 들러 로봇 제작을 도왔다. 올 2월부터는 이 씨가 만든 로봇을 리모컨으로 조정할 정도로 실력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아이들 물론 아내까지 두팔 걷어” 회사원 정균희씨 가족▼

회사원 정균희(45) 씨 가족은 3년 전 케이블TV에서 영국의 로봇 배틀 프로그램을 우연히 본 뒤 모두 로봇 마니아가 됐다.

“우리도 한번 만들어 볼까 했더니 다들 좋다고 하더라고요. 평소 그런 쪽에는 관심이 없을 것 같던 아내까지 말이죠.”

차남 재헌(15·중3) 군이 재기 발랄한 상상력으로 로봇을 설계하면, 통신회사 엔지니어 출신인 정 씨가 기술적인 조언을 했다. 부품 조립은 성격이 꼼꼼한 첫째 재호(18·고3) 군의 몫.

이렇게 3부자가 만든 로봇은 ‘루시퍼’ ‘흑룡’ ‘비스마르크’.

올 2월까지 출전한 국내 로봇 배틀 경기에서 재호 군의 로봇인 흑룡은 6승 4패, 재헌 군이 가진 비스마르크는 5승 5패의 좋은 성적을 올렸다.

올해는 정 씨가 지방으로 직장을 옮기고 두 아들이 중고교 고학년이 되면서 로봇에 투자하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그래도 가족이 모이는 주말이면 로봇과 관련된 이야기로 시끌벅적하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로봇 배틀(Robot Battle):

원격조종장치로 로봇을 조종해 상대 로봇과 힘을 겨루는 로봇 스포츠 경기. 상대 로봇을 구멍에 밀어 빠뜨리거나 작동 불능 상태로 만들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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