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홍관]흡연은 습관 아닌 질병이다

  • 입력 2006년 4월 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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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질병은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아닌 ‘흡연’이다. 무려 1000만 명의 국민이 이 질병에 걸려 있다. 흡연은 하나의 취미나 습관이 아니라 ‘니코틴 중독’이라는 질병으로 규정된 지 오래다. 세계 모든 나라가 이용하는 세계질병분류기호(ICD)에서도 흡연은 ‘담배로 인한 정신적 행동적 장애’라는 질병으로 분류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흡연자 모두 금연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사실 흡연자들도 70∼80%는 금연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흡연자가 금연을 원할 경우 1년 금연성공률이 5%에 불과하다. 금연성공률이 낮은 이유는 흡연이 니코틴 중독이기 때문이다. 흡연자가 담배를 끊게 되어 혈액 속의 니코틴 농도가 낮아지면 금연 후부터 4∼6주까지 초조, 짜증, 집중력 장애, 불안, 두통 등의 금단증상이 일어난다. 금단증상은 흡연자의 80%에서 나타난다.

금단현상을 극복하는 방법으로는 행동요법과 약물요법이 있다. 약물요법은 흡연이 아닌 방식으로 니코틴을 공급해 주는 대체요법과 부프로피온이라는 약을 복용하는 것 등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모두 금단 증상의 괴로움을 줄여 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은 1년 평균 8.7회 의료기관을 방문한다고 한다. 암, 심장질환, 호흡기질환과 같이 흡연과 직접 관련이 있는 문제가 있을 때는 의사의 금연권고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먹는 약을 6주 복용한다면 약값으로 대략 10만 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렇게 약을 복용하여 금연에 성공한다면 평생 흡연으로 인한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지불할 만하다. 연구에 의하면 금연으로 수명 1년을 연장하기 위해 드는 비용은 유방암 검진비용의 5%, 고혈압치료제의 10%에 불과하다. 이렇게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금연의 약물요법이 널리 사용되지 않음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 이유는 아직 의사와 약사들도 금연의 약물요법에 익숙하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 금연의 약물요법이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 것도 장벽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이름은 ‘건강보험’이다. 이렇게 이름을 바꾼 이유는 보험료를 지급하는 항목을 예전에는 질병을 치료하는 것만을 대상으로 하였지만 현재는 질병을 예방하는 의료서비스에도 보험을 지불하자는 취지에서이다. 그런데 흡연은 이미 건강보호 차원이 아니라 하나의 질병으로 분류된 지 오래되었는데도 아직 금연진료를 할 경우 보험료를 지급하지 않는다. 적절치 않은 일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금연치료를 받기를 원하는 흡연자 가운데 니코틴 의존증으로 판정된 사람을 대상으로 올해 4월부터 의료보험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금연을 개인의 의지와 노력의 문제로 여겨 왔으나 이제는 질병 치료의 개념으로 인식을 전환하였다고 한다. 일본은 금연치료를 통해 15년 안에 남성 흡연율이 47%에서 26%, 여성 흡연율이 11%에서 9%로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흡연으로 인한 생활습관병의 감소로 의료비가 1846억 엔(약 1조5000억 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흡연규제를 위해 금연구역을 확대하고, 담뱃값을 인상하고, 언론을 통한 금연캠페인을 전개하고, 보건소에 금연클리닉을 만들고, 금연상담전화를 위한 금연콜센터를 만들었다. 이제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금연진료 활성화를 위해서도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우선 의료인들에게 금연진료 지침을 만들어서 배포해야 한다. 또한 금연을 위한 행동요법과 약물요법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줄 것을 요청한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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