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재 발견-주부 김성희씨의 신나는 'e라이프'

  • 입력 2003년 1월 22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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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동안 한 일을 모두 말 해 보세요.

주부 김성희씨(33·서울 성북구 석관동)가 대답했다.

“서영엄마 만나서 요즘 애들 무슨 책 사 주는지 얘기 좀 듣고요, 서점에 가서 서영엄마가 알려준 책 찾아 사고, 아빠(남편) 아침 식사거리도 좀 샀어요. 그 뒤엔 요즘 개봉한 영화 두 편 봤고 은행에 들러서 공과금도 냈지요, 또….”

―그럼 거의 집에 안 붙어 계셨겠군요.

“5세 된 규리와 이제 두 돌인 관호를 데리고 어디를 돌아다닐 수 있겠어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갔어요.”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자연스럽게 ‘인터넷에서’ 한 일을 얘기했다. 그의 답변에 “인터넷을 했다”는 표현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인터넷’은 더 이상 ‘하는’ 일이 아니므로.

1993년부터 PC통신을 사용해온 김씨는 95년 남편 김성우씨(33·오토데스크 코리아)와 결혼한 뒤 남편의 권유로 e메일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인터넷과 친해졌다. 이제는 “인터넷이 없으면 정상생활이 어려울 것”이라고 얘기할 정도가 됐다.

“저만 그러냐고요?”

다음은 30대 초중반 신세대 주부 사이에서도 “별로 특별할 것 없다”는, 김씨가 털어놓는 자신의 ‘보통 생활’.》

▽e메일 남편 사랑=“남편은 직장동료들 사이에서 ‘가정적인 가장’으로 통해요. 누구를 만나든 거리낌 없이 ‘나 자신보다 가족이 소중하다’고 얘기한대요. 저도 잘 알지요. 그런데 솔직히 주말에는 서운해요. 일주일 내내 아이들과 씨름한 저는 ‘이벤트’를 기대하는데, 남편은 쉬고 싶어하거든요.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것은 남편이 쉬면서도 제 눈치를 본다는 거예요. 차라리 편히 누워 자면 제 가슴이 덜 아플 텐데, 소파에 누워 있으면서도 제가 아이들 장난감 정리를 하면 안절부절못하는 거 있죠….”

“저는 눈물이 많아서 그런 얘기를 남편 앞에서 다 못하거든요. e메일로 조목조목 다 얘기를 했더니, 그제서야 제 마음도 후련해지더라고요. 그날 저녁 퇴근하는 남편 표정을 보니, e메일을 읽은 것 같더군요. 그런데 끝내 답장은 없었어요….”

▽다른 엄마들과=“운전을 하기는 하는데, 애 둘 데리고 나가면 정말 정신 없어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애들을 데리고 나갔다가는 파김치가 돼서 돌아와 ‘다시는 밖에 안 나간다’ 다짐을 하지요. 친구들과 자주 못 만나는 대신 아이큐베이비(www.iqbaby.co.kr)를 찾아요. 비슷한 또래의 아기 키우는 엄마들이 모여 아기들 책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데, 여기에서는 ID ‘서영맘’이라는 분이 유명하죠. ‘서영맘’은 서점에 매일 가시나 봐요. 그분이 추천해 주는 책은 거의 틀림없더라고요. 아이큐베이비에서도 책을 사기도 하지만, 때로는 책 제목을 메모해 놨다가 사은품을 많이 주는 북파크(www.bookpark.com)에서도 사요….”

▽남편 아침밥요?=“애들 때문에 아무리 밤잠을 설쳐도 남편 아침밥은 꼭 챙겨요. 그런데 너∼무 피곤할 때는 쿡쿡(www.cookcook.co.kr)에서 아침식사 주문을 해요. 예를 들어 김치찌개를 시키면 김치 파 고추장 등 물 붓고 끓이기만 하면 되도록 재료가 아침 식사시간에 맞춰 배달되거든요. 자주 이용하기에는 값이 좀 비싼 편이지만, 남편이 굶고 출근하는 것보다는 백배 낫지요….”

▽쌀, 수박 무겁죠?=“인터넷 쇼핑은 할인마트보다 비싼 줄 알았어요. 배달도 늦게 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농협에서 운영하는 인터넷하나로마트(shopping.nonghyup.co.kr)는 좀 다르더군요. 오전에 주문하면 오후에 물건이 도착하고, 농협에서 하는 거라 농산물도 싱싱해서 좋아요. 수박 쌀같이 무거운 것을 문 앞까지 갖다주니 좋고요. 3만원 이상 주문해야 배송료를 안 받는다고는 하는데, 솔직히 요즘 시장 한 번 나가서 3만원 밑으로 사기도 힘들잖아요….”

▽저의 ‘황금시간’은요=“이건 비밀인데, 개인들끼리 자료를 주고받는 P2P서비스인 PD박스(www.pdbox.co.kr)를 쓰면 웬만한 영화나 뮤직비디오는 다 볼 수 있거든요. 밤 10시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 남편이 약속 때문에 늦을 때 저는 맥주 한 캔을 들고 PC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PC를 켜고 불을 끈답니다. 화면은 작지만 PC에 5.1채널 스피커를 설치했기 때문에 음향은 극장이랑 똑같거든요. 남편이 일찍 올 때는요. 맥주 두 캔을 준비하지요.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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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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