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차를 은밀하게 주행시험하는 자동차기업. 먼바다에 독성폐기물을 남몰래 버리는 선주. 경쟁업체의 감시를 피해 태백산맥 외진 곳에서 타당성 조사를 벌이고 있는 개발업자. 부산으로 출장간다고 거짓말한 뒤 아내 몰래 외도하는 남편.
이들은 앞으로 주위를 둘러볼 게 아니라 하늘을 올려다봐야 할 것 같다. 7백∼8백㎞ 상공에 까마득히 떠있는 상업용 위성이 차량의 외형이나 선박의 이름, 차량의 번호판을 정확히 촬영해 어디론가 보낼지 모르기 때문이다.
군사정보기관의 전유물로 여겼던 첩보위성 정보가 상업용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지난 40년간 수천억달러를 쏟아부어 만든 첩보기술이 냉전종식으로 ‘상업적 판매대’ 위에 올려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상업용 위성 발사를 최초로 허용했다. 이에 따라 3m 크기의 지상물체 식별이 가능한 어스워치사의 얼리버드(Early―bird)1호가 발사됐다.
내년에는 0.82m 물체를 확인할 수 있는 군사위성급 퀵버드위성을 발사해 정보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위성전문가들은 “향후 5,6년내에 상업용 위성의 정밀도가 현재의 군사위성 수준(해상도 15㎝)에 상당히 근접할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시장이 좁아진 미국과 러시아의 방위산업체가 상업용 위성개발에 눈을 돌릴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의 얼리버드위성은 러시아의 대륙간 탄도유도탄인 SS20을 개량한 스타트로켓에 실려 발사됐다. 군사기술이 ‘상업의 옷’으로 갈아입은 ‘신호탄’인 셈이다.
위성정보 판매에 나선 기업은 미국에만 10여개. 이중 에어리얼이미지사는 러시아의 소빈포른스푸트닉사가 보유한 해상도 2m급 군사위성 사진을 판매중이다.
인공위성 정보 판매는 프랑스 스폿(S
POT)이미지사가 86년 독자위성을 발사하며 선도했다.
북한이 계획한 금강산댐의 수공(水攻)능력 평가에도 이 위성자료가 일부 활용됐다. 88년 인도는 IRS위성을 쏘아올려 이에 가세했다.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는 해상도가 5∼10m급. 도시개발 환경오염 자원탐사 등 광역정보 판단에는 유용하지만 ‘번호판 확인’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엔 부족했다.
상업용 위성은 앞으로 정확성과 신속성 측면에서 군사위성과 어깨를 견줄 것으로 보인다.
미중앙정보국(CIA)의 LACROSS처럼 비오는 밤중에도 관측이 가능한 위성이 등장할 날도 머지 않았다.
미국 상무성(DOC)은 “위성정보 시장이 97년 4억달러에서 2000년엔 20억달러로 급증할 것이다”고 예상했다.
상업용 첩보위성이 상공을 지나가는 시간에는 새 차의 주행시험 등 은밀한 활동을 중단해야 하는 시대가 머지 않았다.
〈최수묵·홍석민기자〉